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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오동 전투' 리뷰 (독립군, 홍범도, 역사왜곡)

필름아카이브 2026. 7. 19. 01:40

목차


    일본군 사상자 457명, 독립군 사상자 4명. 1920년 6월 7일 봉오동 골짜기에서 벌어진 이 전투의 결과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솔직히 눈을 의심했습니다. 동아시아 최강을 자처하던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독립군이 거둔 첫 번째 대승. 그 역사가 왜 지금껏 이렇게 조용했는지, 그게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독립군, 목숨을 건 유인 작전

    봉오동 전투를 이해하려면 먼저 '매복 유인 전술'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매복 유인 전술이란 소수의 병력이 적을 도발해 아군이 유리한 지형으로 끌어들인 뒤 대기 중인 주력 부대가 일제히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미끼가 되어 적을 함정으로 끌어들이는 전술이죠.

    문제는 그 미끼 역할이 말 그대로 목숨을 거는 일이라는 겁니다. 독립군 팀 대장 장하를 비롯한 소수의 대원들은 일본군 선발대를 도발해 분노를 끌어올린 뒤, 당하는 척 도망치며 봉오동 골짜기까지 끌고 와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갈대나 나무 하나 없는 개활지, 즉 사방이 트여 총알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지역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습니다.

    더 힘든 건 불확실성이었습니다. 봉오동에 매복 중인 홍범도 부대의 병력이 100명인지 200명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았으니까요. 수적으로 압도적인 일본군을 끌고 왔는데 아군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독립군이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작전을 감행한 건, 어제 농사짓던 사람도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는 믿음 하나였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직접 느낀 건, 수치나 전략보다 그 '믿음'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는 겁니다.

    • 봉오동 전투 일시: 1920년 6월 7일
    • 작전 방식: 매복 유인 전술 — 소수가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
    • 최대 난관: 개활지 통과 구간, 아군 병력 수 불확실
    • 핵심 동력: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로 뭉친 민간인 출신 독립군
    요약: 봉오동 전투의 핵심은 화력이 아닌 지형과 믿음을 무기로 삼은 목숨을 건 유인 작전이었습니다.

     

    홍범도와 독립군, 첫 승리의 의미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주력 부대는 봉오동 골짜기에 매복한 채 유인 부대가 적을 끌고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협곡 지형은 병력이 적어도 화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이를 군사학 용어로 '지형 이점(Terrain Advantage)'이라 하는데, 여기서 지형 이점이란 자연 지형을 방어 또는 공격에 유리하게 활용해 실제 전력 이상의 효과를 내는 전술적 우위를 말합니다.

    결과는 역사가 말해줍니다. 일본군 사상자 457명, 독립군 사상자 4명(출처: 독립기념관). 수적으로도, 장비로도 훨씬 앞서던 일본 정규군이 지형 하나에 무너진 겁니다. 이 전투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항일 무장 독립운동 역사상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최초의 공식 승리였으니까요.

    봉오동 전투는 이후 청산리 대첩의 발판이 됩니다. 청산리 대첩이란 1920년 10월, 역시 홍범도 장군을 포함한 독립군 연합이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열흘 넘게 싸워 대승을 거둔 전투입니다. 봉오동이 없었다면 청산리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청산리 대첩만 굵게 다루는 걸 봤는데, 그 앞에 봉오동이 있었다는 걸 제대로 인식한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요약: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최초의 승리이자,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지는 항일 무장투쟁의 첫 번째 이정표였습니다.

     

    2021년 봉환, 늦었지만 돌아오신 홍범도 장군

    2021년 8월,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대한민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 봉환 행렬을 뉴스로 보면서 묘하게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후손으로서 죄스러운 마음이 함께 밀려왔다고 해야 할까요.

    홍범도 장군은 1943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일제에 의해 연해주로 쫓겨났다가 소련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까지 끌려가신 분입니다. 나라를 위해 온 생을 바치셨지만, 정작 그 나라에서 숨을 거두지 못하셨습니다. 78년 만의 귀환이었습니다.

    더 씁쓸한 건, 독립 이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친일 전력을 가진 인물들이 권력의 비호 아래 요직을 차지하고 승승장구하는 동안,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이름 없이 싸우다 쓰러진 수많은 독립군은 잊혀졌습니다. 이 사실은 지금도 제 안에서 쉽게 소화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서훈 현황을 보면,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상당수에 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출처: 국가보훈부). 이제라도 한 분 한 분 찾아내어 제대로 된 예우를 갖추는 것, 그것이 후손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78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오신 홍범도 장군의 봉환은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했던 역사적 의무였습니다.

     

    역사왜곡, 흉상 이전 논란과 우리가 지켜야 할 것

    2023년 8월, 저는 뉴스 하나에 손을 멈췄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진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처음엔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이끈 항일 무장 독립운동의 상징을, 검증되지 않은 이념 논리로 끌어내린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이 사건은 단순한 흉상 이전이 아닙니다. '역사수정주의(Historical Revisionism)'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역사수정주의란 충분한 사료적 근거 없이 기존에 정립된 역사적 사실을 정치적·이념적 목적에 따라 재해석하거나 부정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이 일본 덕분에 발전했으니 감사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도 이 범주에 속합니다. 제가 직접 접해본 이런 주장들은 하나같이 구체적인 1차 사료 없이 뜬구름 잡듯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역사란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사료 없이 이념에 끼워 맞춰 전파하고 교육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독립군의 찬란한 항전 역사에 정치 논리를 덮어씌우는 것은, 결국 그 시대를 목숨으로 버텨낸 분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올바른 사료를 기반으로 한 역사교육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근간을 지키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자 정의입니다.

    요약: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은 역사수정주의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사료에 근거한 올바른 역사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봉오동 전투가 청산리 대첩보다 덜 알려진 이유가 뭔가요?

    A. 저도 같은 의문을 가졌었는데, 교과서 비중 차이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청산리 대첩은 규모와 기간 면에서 더 극적으로 묘사되기 쉬운 반면, 봉오동 전투는 유인 작전이라는 치밀한 전술이 중심이라 서술이 쉽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봉오동이 없었다면 청산리도 없었습니다. 첫 승리의 자신감이 이후 전투의 토대가 되었으니까요.

     

    Q.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 사상자가 4명밖에 안 된 게 사실인가요?

    A. 독립기념관 공식 기록 기준으로 독립군 전사자 4명, 일본군 사상자 457명으로 집계됩니다. 물론 전장의 기록은 어느 쪽이 작성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고, 일본군은 자국 피해를 상당 부분 축소 보고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다만 지형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에서의 매복 작전이었던 만큼, 독립군 피해가 극히 적었던 것은 충분히 설명이 됩니다.

     

    Q.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결국 어떻게 됐나요?

    A. 2023년 실제로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이 이전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의 비판이 거셌고, 사회적 논란이 상당 기간 이어졌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사건은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적 평가를 정치 논리로 재단하려 한 시도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Q. 봉오동 전투를 다룬 영화, 볼 만한가요?

    A.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이 출연한 영화 '봉오동 전투'(2019)는 이 전투를 처음으로 스크린에 옮긴 작품입니다. 한두 명의 영웅보다 이름 없이 싸운 수많은 독립군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극적 구성도 탄탄해서, 봉오동 전투를 처음 접하는 분들께 입문작으로 추천할 만합니다.

     

    결론

    봉오동 전투는 수치만 놓고 보면 기적 같은 승리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개활지를 맨몸으로 가로지르며 총알을 피해 달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농사를 짓다 오늘은 독립군이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들을 우리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저는 마음에 걸립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78년 만에 돌아온 것처럼, 역사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정치 논리나 이념으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재단하는 행위는 그 시대를 살아낸 분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올바른 사료에 기반한 역사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든든하게 받쳐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봉오동을 기억하는 것, 그게 시작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GjvfROk2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