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리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며 감정 본부가 뒤집히는 그 장면, 왠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촌 누나 방의 미녀와 야수 브로마이드를 보며 자란 저에게 디즈니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는데, 인사이드 아웃은 그중에서도 유독 오래 마음에 걸린 작품입니다. 억지로 웃으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 그게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 이 영화는 조용하고도 정확하게 짚어냈습니다. 감정 시스템, 라일리 머릿속은 어떻게 생겼나인사이드 아웃이 다른 애니메이션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심리학의 핵심 개념인 감정 조절(Emotion Regulation)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정 조절이란 특정 감정이 지나치게 억압되거나 과잉될 때 개인의 심리적 균형이 무너진다는 개념으로, 임상심리학에서 오래전부..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4개 부문 후보에 올라 11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가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중학교 2학년 때 비디오로 처음 봤는데, 그때 받았던 충격과 감동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이맥스도 4D도 없던 시절, 거실 TV 앞에서 온 가족이 모여 봤던 그 영화가 어떻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야기되는지, 이번에 다시 꼼꼼히 들여다봤습니다. 잭과 로즈, 단순한 멜로가 아니었다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슬픈 사랑 이야기로만 받아들였습니다. 사춘기가 막 시작된 중2 남학생 눈에는 로즈가 예뻤고, 잭이 멋있었고, 둘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게 전부였죠.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타이타닉 침몰 사고의 실제 기록들을 찾아보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가장 먼저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영화 어바웃 타임은 21세의 영국 청년 팀이 아버지로부터 남자 혈통만이 가진 시간 여행 능력을 물려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로맨스 영화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꽤 오래 생각에 잠겼습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이야기인데, 결국 말하고 싶은 건 지금 이 순간이었으니까요. 시간 여행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들팀이 아버지에게 능력을 전해 들을 때 처음엔 믿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 장면에서 '나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아마 똑같이 반신반의했을 것 같습니다.팀은 처음에 이 능력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연말 파티에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여성에 대한 아쉬움처럼, 용기가 없어..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미 끝난 사랑'을 굳이 다시 꺼내 볼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스크린 속 정원과 은호의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아내와 처음 함께하던 시절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이 글은 영화 속 장면들을 따라가며, 사랑이 왜 어긋나고 또 어떻게 우리를 단단하게 만드는지 직접 겪은 이야기와 함께 풀어봅니다. 초심을 잃을 때 사랑은 왜 어긋나는가영화에서 정원과 은호가 처음 만나던 장면을 보면서 제가 직접 느꼈는데, 두 사람이 바닷가에서 소원을 빌던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떤 현실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은호의 꿈은 다양한 엔딩이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 정원의 꿈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을 갖는 것. 두 사람의 꿈은 형태는 달..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저는 허봉구를 그냥 한심한 백수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300원짜리 빨간 라이터 하나를 돌려받으려고 달리는 열차 위를 기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어느 순간 저 자신을 그 자리에 겹쳐놓고 있었습니다. 내 밥그릇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며 살아온 건 허봉구만이 아니었으니까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방식일반적으로 자존감(self-esteem)이 낮은 사람은 조용히 움츠러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자존감이란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는 심리적 토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자존감이 낮다는 게 꼭 수동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더라고요. 허봉구가 딱 그 경우였습니다.영화 초반, 그는 이마로 땅콩을 깨고, 예비군 훈련에 가야 ..
솔직히 저는 토이 스토리가 3편에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디가 "잘 가, 파트너"를 남기고 떠나는 장면에서 이미 이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었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1996년 사촌 누나에게 받은 영어 더빙 비디오 테이프 하나가 제 어린 시절을 통째로 바꿔놓은 것처럼, 5편도 결국 극장으로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이번엔 두 딸을 데리고요.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이건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악역 없는 토이 스토리, 그래서 더 섬뜩했습니다일반적으로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긴장감은 명확한 악역에서 나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편의 시드, 2편의 알과 스팅키 피트, 3편의 랏소까지 30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5편에는 그 악역이 없습니다. 그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