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어린 시절 2029년을 그냥 까마득한 미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터미네이터가 개봉한 1984년, 스카이넷이 인류를 지배하는 2029년은 상상 속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불과 3년 뒤가 그 2029년입니다. AI가 일상 깊숙이 들어온 지금, 다시 꺼내 본 터미네이터 2는 단순한 SF액션이 아니라 꽤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습니다. T-800과 T-1000, 두 터미네이터가 보여준 기술의 격차터미네이터 2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T-800이 총을 맞아도 멀쩡히 걸어나오는 T-1000을 보며 당황하는 순간입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왜 같은 편이 더 약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설정이 사실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T-800은 금속 내골격(Endos..
영화 한 편이 지금의 아내와 처음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을 불쑥 꺼내올 때가 있습니다. 2004년 작 가 바로 그런 영화였습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설정은 익숙했지만, 이 영화가 내놓은 결말은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가슴 어딘가가 묵직하게 눌리는 기분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영화 배경 — 익숙한 설정, 낯선 결말타임루프(Time Loop) 장르라고 하면 보통 주인공이 반복 속에서 실수를 고치고 해피엔딩을 맞는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여기서 타임루프란 특정 시점으로 시간이 반복되는 서사 장치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는 이 공식을 정면으로 비틉니다. 이안은 하루를 되돌려 사만다의 죽음을 막는 데 성공하지만, 그 대가로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왜 굳이 이런 결말을?"이라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진짜 끝은 언제일까요? 어느 아침 지하철 안에서 우주의 시간 앞에 인간의 일생이 얼마나 찰나인지 문득 실감했습니다.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2년 전 세상을 떠난 장모님께로 이어졌고, 가슴 한켠이 무거워지던 그날 저녁 다시 한번 픽사의 '코코'를 만났습니다. 죽음을 다룬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느낀 감정은 무거움이 아니라 따뜻함이었습니다. 죽음의 의미 — 잊히는 것이 진짜 끝이다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우리가 죽은 뒤,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는 그 순간이야말로 진짜 소멸이라는 생각 말입니다.'코코'는 멕시코의 전통 명절인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을 배경으로 합니다. 망자의 날이란 해마다 11월 1~2일, 죽은 이들이 잠시 산 자들의 ..
거절이 습관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화 의 주인공 칼처럼, 저도 한때 새로운 도전 앞에서 먼저 "안 돼"를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는데, 긍정적 사고 하나가 사람의 인생 방향을 얼마나 다르게 틀 수 있는지를요. 짐 캐리라는 배우가 이 주제를 이렇게 설득력 있게 풀어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긍정적 사고가 실제로 삶을 바꿀 수 있을까영화 에서 칼은 이혼 후 3년 동안 모든 것을 거절하는 삶을 삽니다. 대출 심사 담당자임에도 웬만한 대출은 다 거절하고, 친구의 파티도, 이웃 할머니의 부탁도 모두 "노(No)"로 막아버리죠. 칼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심리적 방어기제였습니다. 여기서 방어기제란, 외부 자극이나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
경찰이 연쇄 살인 용의자를 잡겠다며 엉뚱한 사람에게 총을 쏴 죽입니다. 그런데도 그 경찰은 진급을 합니다. 2010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가 그린 장면인데, 처음 봤을 때 "이게 설마 지금 현실이랑 이렇게 비슷하다고?" 싶어서 뒤통수가 얼얼했습니다. 초동수사 실패가 만들어낸 부당거래의 시작영화는 다섯 건의 연쇄 살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경찰의 무능함에서 출발합니다. 국과수 감정 결과 혈흔 훼손 정도가 너무 심해 증거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 초동수사(初動搜査)란 사건 발생 직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최초 수사 단계를 말하는데, 이 단계에서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이후 수사 전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영화 속 경찰은 바로 이 지점에서 치명적으로 실패합니다.제가 평소 범죄 관련 방송이나 ..
"어이가 없네." 이 네 글자가 스크린을 넘어 현실까지 건드렸던 건, 아마도 그게 단순한 대사가 아니었기 때문일 겁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역대 박스오피스 4위에 오른 작품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시원한 액션 영화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씁쓸함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조태오라는 악역이 왜 그렇게 소름 돋았나영화 속 악역 조태오는 재벌 3세이자 종로구 기획조정실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등장합니다. 대중 앞에선 여유롭고 친근한 척하지만, 카메라가 꺼지는 순간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자신의 손에 글러브를 끼고 채권자를 보는 앞에서 폭행을 저지르는 장면은, 솔직히 이건 예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제가 느낀 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묘하게 익숙한 불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