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제가 하지도 않은 살인의 대가로 15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면 어떨까요. 영화 '재심'을 보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강압수사로 범인을 만들어내고 조작된 증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꺾었던 우리 사법의 어두운 시절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조작수사, 어떻게 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만드는가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엔 '설마 이 정도까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다 보니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단순히 나쁜 형사 한 명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한 청년을 범인으로 찍어내는 방식으로 굴러갔거든요.영화 속 강력팀 팀장 철기는 오토바이 사고 현장에서 목격자 신분이던 현우를..
1986년 경기도 화성, 10명의 여성이 연쇄 살인마에게 희생됐고 사건은 33년간 미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바로 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도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이 사건을 접할 때마다 "왜 아직도 못 잡았지?"라는 답답함이 가슴을 눌렀는데, 그 감정이 이 영화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진범 '이춘재'가 검거된 시점에 다시 본 '살인의 추억'은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 왔습니다. 수사기법 — 직감과 논리 사이, 그 처절한 간극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실화 기반이라고?"였습니다. 범죄수법, 수사 과정, 심지어 증거 부재 상황까지 당시 기록과 너무나 흡사하게 묘사돼 있어서 단순한 범죄 영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영화 속 두 형사는..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저는 10.26사태에 대해 꽤 알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유신독재의 마지막 장면,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진 그 밤을 책으로, 자료로 여러 번 들여다봤으니까요. 그런데 '남산의 부장들'을 극장에서 보면서 예상 밖이었습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가 스크린 위에서 이렇게까지 촘촘하게 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탄을 넘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역사적 디테일: 팩션 영화가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남산의 부장들'은 팩션(faction) 영화입니다. 팩션이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한 장르로, 역사적 사건을 뼈대로 삼되 상상력으로 살을 붙이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1990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
2024년 12월 3일 밤, 뉴스 속보 알림이 울렸을 때 저는 솔직히 눈을 의심했습니다. '설마 지금이 1979년도 아니고…' 하는 생각과 이야기로만 들었던 예전 군사반란이 떠올라 두려움을 느꼈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분노했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현실에서 비슷한 장면이 펼쳐지는 걸 목격했습니다. 12.12 군사반란의 구조와 2024년 비상계엄의 데자뷔, 그리고 우리가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이유를 짚어봤습니다. 12.12 군사반란, 그날 밤의 구조를 다시 읽다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피살됩니다. 권력의 공백이 생긴 바로 그 순간, 이미 오래전부터 기회를 엿보던 세력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육사 11기를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 사조직 하나회가 그 ..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총을 든 저 병사들은 도대체 왜 싸우는 걸까, 라는 질문입니다. 웰컴 투 동막골을 다시 꺼내 본 건 우연이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이념이라는 말을 모르던 평범한 사람들이 이념 때문에 죽어간 전쟁. 그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전쟁영화인데 왜 이렇게 웃긴 걸까솔직히 처음 볼 때는 좀 의아했습니다. 분명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인데 劇 전반부 내내 저도 모르게 웃고 있었거든요.1950년 11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선이 요동치던 시절. 후퇴하던 인민군 두 명과 부대에서 이탈한 국군 한 명이 강원도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습니다. 거기서 만난 건 전쟁이 난 줄도 모르는 마을, 동막골이었습니다. 총이 뭔지,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그저 '어른들의 어려웠던 시절'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였던 탓에 뉴스 화면 속 낯선 경제 용어들이 무섭게 느껴졌던 감각만 남아 있었을 뿐이었는데, 이제 어른이 된 지금 영화 한 편이 그 기억을 완전히 다른 온도로 되살려 놓았습니다. IMF 외환위기,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몰랐던 것들많은 분들이 IMF 외환위기(1997년 한국 외화 유동성 위기)를 "IMF 때문에 나라가 망할 뻔했다"고 기억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IMF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으로, 쉽게 말해 달러가 급히 필요한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글로벌 공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