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한 군인의 유해가 고향 땅을 밟는 그 순간, 공항 전체가 멈춥니다. 영화 '챈스 일병의 귀환'을 보면서 저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군복무 시절 밤샘 근무를 하며 중얼거렸던 군가 한 소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밤잠을 이룬다.'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이 영화는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깊게 일깨워 줍니다. 챈스 일병의 귀환, 어떤 영화인가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라크에서 전사한 해병대 일병 챈스 러셀 펠프스의 유해를 고향인 와이오밍주 뒤부아까지 운구하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마이크 스트로블 대령이 자원하여 호송관(Escort Officer)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호송관이란, 전사한 장병의 유해가 가족의 품에 안길..
솔직히 저는 영화 '아일라'를 몰랐습니다. 한국전쟁을 다룬 콘텐츠라면 빠짐없이 챙겨본다고 자부했는데, 터키에서 역대 5위 흥행을 기록한 이 영화를 이제서야 알았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1950년 한반도에서 시작된 터키 군인 슐레이만과 전쟁고아 소녀 아일라의 이야기, 그것도 60년 만에 재회하는 실화라는 걸 알고 나서는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한국전쟁과 터키 군인 슐레이만의 선택6·25 한국전쟁(Korean War)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입니다. 여기서 동족상잔(同族相殘)이란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죽이는 참혹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이 전쟁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단 네 글자로 압축합니다. 저는 이 땅에서 불과 70여 년..
영화를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경험, 한 번쯤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영화 '대호'를 보고 나서 딱 그랬습니다. 단순한 호랑이 사냥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나서야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천천히 실감이 됐습니다. 민족정기, 상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민족정기를 지우려 했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호랑이가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단군 신화부터 올림픽 마스코트까지, 호랑이는 늘 우리 곁에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대호'를 보고 나서야 그게 단순한 '마스코트 이상'의 의미였다는 걸 제가 직접 실감했습니다.산군(山君),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왕(山中王). 이 모든 호칭이 호랑이를..
완벽한 커리어, 흠잡을 데 없는 삶. 그런데 정작 사람다운 삶이었을까요? 2015년 영화 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멈칫했습니다. 주인공 이연우가 남의 몸으로 살아가는 한 달, 그게 어쩌면 제가 지금 놓치고 있는 뭔가를 건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 되묻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성공한 변호사, 그런데 왜 공허했을까이연우는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입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변호사로, 미국 지사 발령까지 받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제가 느낀 건 "저 사람 참 외롭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이연우의 공허함은 어릴 때부터 시작됩니다. 마도로스였던 아버지를 잃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도로스란 배를 타며 오랜 시간 바다 위에서 생활하는 선원을 뜻합니다. 쉽게 ..
화장실 하나를 가는 데 800미터를 걸어야 했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미국 최고의 과학기관 NASA에서, 1960년대에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영화 〈히든 피겨스〉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실화라는 사실이 한동안 믿기지 않았습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그 모든 벽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은 세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1960년대 NASA와 인종차별 — 꿈을 꾸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했던 시절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게 유독 힘드신 편인가요? 저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규칙 앞에서 한없이 움츠러드는 타입이거든요. 그런데 〈히든 피겨스〉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구나'라고요.영화의 배경은 1961년 미국..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였지만 기대이상의 영화였습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영화라길래 총싸움과 영웅 서사를 기대했는데, 영화 몬태나(2017)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저를 흔들었습니다. 조셉 대위가 평생 죽이고 싶었던 원수를 직접 호송하는 과정, 그 안에서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인간의 이야기가 이렇게 묵직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서부 개척 시대의 민낯, 1892년 코만치족 습격 장면영화는 1892년, 평화롭게 장작을 패던 한 가족의 농가가 코만치족의 습격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저는 한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서부 개척 시대에 미국과 원주민 간의 문제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 오프닝은 꽤 충격이었습니다. 무자비하게 가족을 잃고 숲속으로 도망쳐 바위틈에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