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분단 영화치고 너무 따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무게가 어디에 있는지를.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의 청년들이 총 대신 웃음을 나누다 끝내 비극으로 치닫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비극이 허구가 아니라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저는 꽤 오랫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남북 청년의 우정, 그게 진짜 문제였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 중에는 "남북 청년들의 우정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달랐습니다. 비현실적이어서 슬픈 게 아니라,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슬픈 이야기라는 거였습니다.
영화 속 이수혁 병장과 북한군 오경필 하사의 첫 만남은 지뢰를 매개로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지뢰란 단순한 소품이 아닙니다. DMZ(비무장지대), 즉 군사분계선 일대에 실제로 매설된 수십만 발의 대인지뢰를 상징합니다. 그 죽음의 경계 위에서 적군의 손이 아군의 목숨을 살린다는 설정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 전언입니다.
두 사람은 그 이후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지고, 결국 남성식 일병까지 합류해 북한군 초소에서 함께 어울립니다. 팔씨름을 하고 침 뱉기 놀이를 하는 장면은, 보고 있으면 동네 골목에서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처럼 편안합니다.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장면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돌려봤습니다.
이 구조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원수 집안의 두 청춘이 금기를 넘어 가까워졌다가 비극으로 끝나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구조가 거의 동일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사랑 대신 우정이고, 두 집안 대신 두 국가 체제가 그 자리를 채웁니다. 아름다운 인간적 감정이 끔찍한 비극으로 연결되는 그 공식이,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 이수혁 병장 — 남한 JSA 경비대 소속
- 오경필 하사 — 북한군 초소 근무자, 지뢰 해체로 이수혁을 살림
- 남성식 일병 — 이수혁의 동료, 비밀을 알게 된 뒤 함께 합류
- 정우진 — 오경필과 함께 초소를 지키던 북한군 병사
논산 훈련소에서 외웠던 '대적관', 그 교육의 무게
제가 논산훈련소에 입소해서 5주 군사훈련을 받을 때, 가장 먼저 암기했던 내용이 대적관(對敵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대적관이란 군인이 적에 대해 가져야 할 기본 인식과 태도를 교육하는 개념으로, 쉽게 말해 "우리의 주적이 누구이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머릿속에 새기는 교육입니다. 그 내용은 지금 완전히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며…"라고 시작했던 것만큼은 또렷합니다.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외웠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대적관 교육의 목적이 적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교육이 오랜 시간에 걸쳐 상대를 사람이 아닌 위협으로만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가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함께 웃었고, 함께 놀았고,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총구가 향하게 된 건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서 수십 년간 학습된 반응이 먼저 튀어나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걸 '학습된 분노'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의도적인 증오가 아니라, 시스템이 주입한 반사적 적대감입니다.
영화 속 중립국 감독 위원회(NNSC) 수사관 소피 장 장 소령이 JSA에 도착하자마자 상관으로부터 들은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중립국 감독 위원회란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스위스, 스웨덴 등 중립국으로 구성된 휴전 감시 기구를 말합니다. 그 기구의 수사관에게 "진실을 밝히되, 남북 어느 쪽도 자극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장면은 제가 생각하기엔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닙니다. 이 반도에서 평화가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진실을 덮음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다는 그 말이,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김훈 중위 사건, 영화가 허구가 아닌 이유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김훈 중위 사건을 알게 됐을 때, 솔직히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건 1998년 JSA GP(경계초소)에서 실제로 일어난 군 의문사 사건입니다. 여기서 GP란 General Post의 약자로, DMZ 내부에서 적 동태를 감시하는 최전방 경계초소를 의미합니다. 영화 속 그 초소와 거의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이었습니다.
김훈 중위는 사망한 채 발견됐고, 공식 발표는 자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살이라고 보기엔 석연찮은 정황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예비역 육군 중장 출신이라는 사실이 더 알려지면서 사건은 오랜 사회적 논란이 됐습니다. 사망 19년 만인 2017년에 순직으로 인정받았지만, 사망 원인 자체는 결국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받았습니다. 진실은 영원히 미궁에 남은 겁니다(출처: 군인권위원회 군인보안관).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남한 간부들이 북한 측과 몰래 접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김훈 중위가 그 사실을 적발하려다 변을 당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유족 측에서 제기됐지만, 증명은 끝내 되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 설정이 완전히 상상의 산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군 의문사 사건들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동조치(사건 발생 직후 군이 취하는 첫 번째 현장 보존 및 수사 절차)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는 이후 조사에서 여러 차례 확인됐습니다. 군의 은폐 정황도 적지 않았습니다. 진상을 알고 싶어 하는 유족들의 노력은 계속됐지만, 군은 오랫동안 쉬쉬하며 넘기려는 행태를 반복했습니다(출처: 국회 입법조사처).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올바른 병영문화가 형성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는 작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을 덮어두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선진 군대로 가는 길은 진실을 마주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공동경비구역 JSA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직접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박상연 작가의 소설 『DMZ』가 원작입니다. 다만 1998년 JSA GP에서 일어난 김훈 중위 사건처럼 유사한 성격의 실제 사건들이 존재했고, 영화 속 설정과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그 연관성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Q. 김훈 중위 사건은 결국 어떻게 결론 났나요?
A. 사망 19년 만인 2017년에 순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망 원인 자체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서도 진상규명 불능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누가 어떤 이유로 그를 죽였는지, 혹은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는 지금도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Q. 영화에 나오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실제로 있나요?
A. 네, 실제로 존재하는 다리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 위치해 있으며, 1976년 도끼 만행 사건 이후 폐쇄됐습니다. 과거에는 포로 교환이나 외교적 인물 이동에 사용됐으나, 지금은 실제로 건너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영화에서 이수혁 병장이 자유롭게 오가는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Q. 중립국 감독 위원회(NNSC)는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중립국 감독 위원회(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NNSC)는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설치된 기구로, 스위스와 스웨덴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정전 협정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고, 남북 간 분쟁 발생 시 중립적 입장에서 조사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다만 실질적인 강제력은 없어 조사 결과를 집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결론
공동경비구역 JSA는 볼 때마다 끝까지 다 보기가 힘든 영화입니다. 중반의 그 따뜻한 장면들이 너무 좋기 때문에, 뒤에 올 것을 알면서도 멈추고 싶어집니다. 저는 이 영화가 분단의 비극을 고발하는 영화라기보다, 분단이 사람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게 만든 건 개인의 증오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쌓인 체제의 교육이, 인간적 감정보다 먼저 손을 움직이게 만든 것입니다. 김훈 중위 사건처럼 현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 영화의 무게는 단순한 한국 영화 한 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아직 안 보셨다면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김훈 중위 사건도 함께 찾아보시길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