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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하사탕' 리뷰 (역순 구성, 광주민주화운동, 후회)

필름아카이브 2026. 7. 29.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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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그때 그 선택만 없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문득 치고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저도 몇 년 전 돌이키기 어려운 결정을 하고 나서 한동안 그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1999년 작 영화 <박하사탕>은 바로 그 감정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를 절규하는 장면 하나로, 영화가 끝난 뒤에도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평범했던 한 사람이 시대적 흐름 속에 망가져 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 '박하사탕' 포스터
    평범했던 한 사람이 시대적 흐름 속에 망가져 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 '박하사탕'

    역순 구성이 '후회'라는 감정을 완성하는 방식

    영화는 2000년 현재의 김영호(설경구)가 강물에 뛰어들어 통곡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소풍 나온 사람들 속에서 홀로 절규하는 그 모습은 처음에는 그냥 이상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역순 구성, 즉 미래에서 과거로 거꾸로 흘러가는 비선형 시간 구조로 전개되면서, 그 절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서서히 드러납니다.

    역순 구성이란 일반적인 이야기처럼 원인→결과 순서로 흐르는 대신,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그 원인을 역방향으로 파헤쳐 가는 서사 기법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이 구조가 단순한 연출 기교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후회라는 감정 자체가 원래 그런 식으로 작동하거든요. 우리는 이미 망가진 현재에서 출발해 "어디서부터 잘못됐지?"를 역추적하지, 처음부터 순서대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영호의 타임라인은 2000년에서 시작해 1994년, 1987년, 1984년, 1980년(광주민주화운동), 마지막으로 1979년 첫사랑 순임과의 만남으로 닿습니다. 20년을 거꾸로 달리는 이 구조 덕분에, 관객은 파국을 먼저 목격하고 나서 "이 사람이 원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추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1979년 소풍 자리에서 순임에게 박하사탕을 건네받던 순수한 청년의 얼굴에 도달했을 때, 그 충격은 상당합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영호가 밉지 않았습니다.

    순임이 건네는 박하사탕은 이 영화의 핵심 오브제입니다. 오브제(objet)란 영화에서 단순한 소품을 넘어 특정 감정이나 주제를 상징하는 물건을 말합니다. 박하사탕은 첫사랑의 순수함이자, 영호가 잃어버린 자기 자신의 표상으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1979년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받던 그 사탕이, 2000년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순임 앞에서는 회한의 물건이 됩니다.

    • 역순 구성: 2000년 현재 → 1994년 → 1987년 → 1984년 → 1980년 광주 → 1979년 첫사랑
    • 박하사탕: 순수함과 상실을 동시에 상징하는 핵심 오브제
    • 기차: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반복 이미지
    • "나 다시 돌아갈래" 절규: 한국영화사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클라이맥스
    요약: 역순 구성은 단순한 연출 기법이 아니라, 후회라는 감정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을 그대로 구현한 서사 전략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역사적으로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악인'으로 단정합니다. 일제강점기의 친일 경찰, 군부독재 시절의 고문 형사,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원들. 그들이 저지른 일은 분명 용납될 수 없는 악행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불편한 질문을 건드립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괴물이었을까요?

    영호가 1980년 광주에서 겁에 질린 여학생을 의도치 않게 총으로 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손이 떨렸습니다. 영호는 살인마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계엄령이라는 국가 폭력의 구조 속에서, 신병 한 명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공포 속에서 방아쇠를 당겼을 뿐입니다. 그 순간이 영호를 영구적으로 바꿉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개념으로, 비극을 통해 감정이 정화되는 경험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영화를 보며 실컷 울고 나서 어떤 해소감을 느끼는 그 감각입니다. 그런데 박하사탕은 카타르시스를 주지 않습니다. 영호가 아무리 후회해도, 죽은 여학생은 살아 돌아오지 않고, 고문당한 사람들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불편한 여운이 오히려 이 영화를 오래 붙잡게 만듭니다.

    1984년 고문실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내 형사 영호는 처음에는 망설입니다. 그런데 선배들의 분위기에 떠밀려 피의자의 목을 조릅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손을 씻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사회화(socialization)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 사회화란 개인이 특정 집단의 규범과 행동 방식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영호는 그 시스템 안에서 서서히 괴물로 사회화됩니다. 누군가 그를 억지로 괴물로 만든 게 아니라, 구조가 그를 조금씩 바꿔나간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하면서도 정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승자의 기억만을 역사로 기억합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콘텐츠 대부분은 저항하고 희생된 시민들의 시선에서 서술됩니다. 그것이 마땅히 중심이 되어야 할 관점임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박하사탕은 그 반대편, 즉 가해자 측에 있었던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그가 후회하고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의 후회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존재도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박하사탕은 1999년 개봉 당시 국내 관객 약 50만 명을 동원했으며, 이후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상영 등을 통해 이창동 감독을 세계에 알린 작품으로 평가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상업적 대작이 아님에도 지금까지 회자되는 건, 이 영화가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역사는 개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제가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영화 전체가 다시 한번 다른 결로 읽혔습니다. 영호는 나쁜 사람이기 이전에, 나쁜 시대가 만들어낸 희생양이기도 하다는 것.

    요약: 박하사탕은 가해자의 시선으로 광주민주화운동과 군부독재 시대를 재조명하며, 인간이 구조 속에서 괴물로 사회화되는 과정을 냉정하게 그려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박하사탕 영화 줄거리가 헷갈리는데 어떻게 보면 되나요?

    A. 영화가 2000년 현재에서 1979년으로 거꾸로 흘러가는 역순 구성이라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각 챕터 시작 시 자막으로 연도가 표시되므로, 그걸 기준 삼아 "지금 몇 년도 영호를 보고 있는가"를 의식하면서 보시면 이해가 훨씬 쉽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모든 조각이 맞춰지는 구조입니다.

     

    Q. 박하사탕에서 기차는 왜 계속 나오나요?

    A. 기차는 이 영화에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합니다. 영호가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장면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절망적인 바람을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기차는 멈추지 않고, 과거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Q. 영화가 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넣었나요?

    A. 영호의 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분기점이 바로 광주에서 여학생을 총으로 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개인의 비극이 역사적 폭력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광주를 선택했습니다. 영호 개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Q. 설경구 연기가 정말 좋다는데 어떤 점이 인상적인가요?

    A. 설경구는 1979년의 순수한 청년부터 2000년의 완전히 무너진 인간까지, 같은 인물의 20년을 연기해야 했습니다. 특히 강물에 뛰어들어 통곡하는 장면과, 여학생을 쏘고 난 뒤 넋이 나간 표정은 대사 없이도 모든 것을 전달합니다. 이 역할로 설경구는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결론

    박하사탕은 불편한 영화입니다. 감정을 시원하게 풀어주지도 않고, 영호를 쉽게 용서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후회라는 감정은 원래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영화도 그 불편함을 그대로 안겨줍니다.

    역순 구성이라는 서사 기법이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끝까지 보고 나면 그 구조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된 것인지 알게 됩니다. 한국 현대사에 관심 있거나,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은 멍하게 있을 수 있으니, 시간 여유 있는 날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ADl8cAD-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