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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지전' 리뷰 (반전영화, 프래깅, 국군유해발굴단)

필름아카이브 2026. 7. 31. 01:24

목차


    정전협정이 체결된 그 날 밤 10시, 효력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병사들은 서로를 향해 총을 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 하나로 영화 '고지전'이 기존 한국전쟁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작품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영웅도 없고, 승리의 환호도 없이 끝나는 전쟁 영화. 그게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영화 '고지전' 포스터
    지금까지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영화 '고지전'

    반전영화로서의 고지전 — 에록고지가 말하는 것

    영화 '고지전'의 배경인 '에록고지'는 실제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가상의 장소입니다. 이 두 고지는 6.25전쟁 후반, 철의 삼각지대(평강·철원·김화)를 둘러싼 치열한 전투의 핵심 거점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어느 쪽도 빼앗길 수 없는 보급로의 목줄 같은 곳이었던 셈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충격받은 부분은 고지의 주인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뀐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오늘 아군이 차지한 고지를 내일은 적군이 점령하고, 그 다음날 또 되찾고. 이 반복 속에서 매일 사람이 죽어나갑니다. 그 허망함이 고스란히 화면에 담겨 있었고, 저는 그게 이 영화가 노린 반전(反戰)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속 아군 병사들이 모르핀(Morphine)을 복용하는 장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모르핀이란 아편에서 추출한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극심한 신체 통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를 억제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사용된 약물입니다. 눈에 보이는 외상(外傷)이 없어도 병사들이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게 바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입니다. PTSD란 전투나 극단적 폭력 같은 충격적 경험 이후 반복적인 악몽, 무감각, 과각성 등의 증상이 지속되는 심리적 외상 반응을 말합니다. 당시 이 개념이 공식적으로 정립되기도 전에, 영화는 이미 그 증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기존 한국전쟁 영화들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주인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이 죽는다는 결말입니다.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신념이 전쟁이 길어질수록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북한군 간부, 적과 몰래 물자를 나누다 결국 총구를 겨눠야 하는 병사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건 전쟁 영화가 아니라 전쟁에 대한 고발장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지전이 담아낸 전쟁의 민낯

    영화가 그려내는 내통(內通) 장면도 역사적 맥락을 알면 단순한 드라마 장치가 아닙니다. 남한에서 월북했거나 인민군 출신으로 국군이 된 복잡한 사연을 가진 병사들이 서로의 가족 소식을 전하고 물자를 교환했다는 설정은, 분단의 비극이 얼마나 개인의 삶 깊숙이 파고들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밀어붙이는 중공군의 대공세 장면도 인상적이었는데, 인해전술이란 통신 수단 없이 나팔과 꽹과리로 신호를 보내며 수많은 병력을 물결처럼 투입하는 공격 방식입니다. 낮에는 숨고, 밤에 포위망을 좁히는 이 전술 앞에서 아군이 느꼈을 공포는 영화를 보는 내내 피부로 느껴질 만큼 생생했습니다.

    • 모르핀 의존: 신체 외상 없이도 전쟁 심리 외상(PTSD)으로 약물에 의존하는 병사들
    • 에록고지: 매일 주인이 바뀌는 고지 — 반복되는 희생의 무의미함을 상징
    • 인해전술: 중공군의 대규모 야간 공세로 절망적 전투 환경을 만들어냄
    • 내통 장면: 분단으로 갈라진 개인들의 비극을 전쟁의 실체로 보여줌
    • 결말: 정전 직전까지 이어진 허망한 혈전 — 반전 메시지의 정점
    요약: 고지전은 에록고지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매일 반복되는 무의미한 희생과 PTSD, 인해전술의 공포를 생생하게 담아낸 한국 반전영화의 수작입니다.

     

    프래깅 — 처음 알게 된 그 장면의 충격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고수가 무능한 소대장을 망설임 없이 살해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저는 처음엔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사례입니다. 이를 프래깅(Fragging)이라고 합니다. 프래깅이란 부하 병사가 무능하거나 위험한 명령을 내리는 상관을 직접 살해하는 행위로, 베트남전쟁 시기 미군에서 특히 많이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History.com). 영화에서 이 장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그 행위 자체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군을 사지로 내모는 무능한 지휘관 아래서 살아남으려면, 그 명령을 따르는 것 자체가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프래깅 장면이 단순한 자극적 연출이 아니라 전쟁이 얼마나 도덕의 좌표를 뒤흔들어 놓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였다는 점입니다. 그 장면 이후로 영화 전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휘관과 병사 사이의 극도의 불신, 대공포(對空砲)를 사수해야 하는 절박함과 그것이 적에게 넘어갈 경우 미군의 지원 폭격 자체가 차단된다는 공포 — 이 모든 긴장의 구조가 맞물리면서 영화는 단순한 전쟁 액션이 아닌 심리 드라마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국군유해발굴감식단(MAKRI)입니다. 국군유해발굴감식단이란 6.25전쟁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국방부 산하 기관입니다(출처: 국군유해발굴감식단 공식 홈페이지). 영화 속 에록고지처럼, 지금도 그 격전지 어딘가에 이름도 없이 잠든 분들이 계실 거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무게감이 한참 지나도 가시지 않는 영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정전 협정 체결 이후에도 밤 10시 효력 발생 직전까지 이어지는 처절한 혈전에서 은표와 수혁을 비롯한 수많은 병사들이 쓰러집니다. 이 결말은 꿈도 희망도 없지만, 그래서 더 진실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반전 영화가 "전쟁은 나쁘다"고 구호처럼 외치는 대신, 죽어가는 사람들의 얼굴로 그 메시지를 전달할 때 얼마나 강력한지를 이 영화는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요약: 프래깅이라는 실존 사례를 통해 전쟁이 도덕의 경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준 고지전은, 허망한 결말과 국군유해발굴감식단이라는 현실을 연결해 반전의 메시지를 완성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고지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완전한 실화는 아니지만 실제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합니다. 영화의 배경인 에록고지는 실제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를 모티브로 만든 가상의 장소이고, 철의 삼각지대를 둘러싼 전투와 정전 직전의 혈전은 실제 6.25전쟁 후반기 역사에 근거합니다. 극 중 인물들과 세부 사건은 허구지만, 그 안에 담긴 전쟁의 실상은 사실에 가깝습니다.

     

    Q. 프래깅이 실제로 한국전쟁에서도 일어났나요?

    A. 프래깅은 특히 베트남전쟁 시기 미군에서 공식 기록이 다수 남아있는 사례입니다. 한국전쟁에서의 공식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무능한 지휘관으로 인한 병사들의 극단적 선택이 전쟁사에서 반복되어 온 것은 사실입니다. 영화 '고지전'이 이 소재를 꺼낸 것은 당시 전쟁의 내부 갈등을 직시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Q. 고지전에서 PTSD 표현이 사실적인가요?

    A. 영화 속 병사들이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모르핀에 의존하거나 감각이 무뎌지는 모습은 PTSD의 대표적인 반응입니다. 실제로 6.25전쟁 당시에는 PTSD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 증상을 겪는 병사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전장에 머물렀습니다. 영화는 이 현실을 꽤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Q. 국군유해발굴감식단은 지금도 활동하나요?

    A. 네,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국군유해발굴감식단(MAKRI)은 전국 각지의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DNA 감식을 통해 유가족과 연결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국군유해발굴감식단)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결론

    고지전은 기존 한국전쟁 영화들이 보여주던 영웅적 전투 대신,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시종일관 음울하고 냉소적인 게 사실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난 뒤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무게감이었습니다. 에록고지에서 이름 없이 스러진 수많은 병사들, 그리고 지금도 그 어딘가에서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분들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단순한 감상으로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고지전을 보지 않으셨다면, 화려한 전투신을 기대하지 말고 보시길 권합니다. 그 대신 전쟁이 개인에게 남기는 상처,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무게를 느끼며 보신다면 훨씬 깊이 있게 와 닿을 영화입니다. 국군유해발굴감식단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보시는 것도,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이어받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609aXCEWL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