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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그저 '어른들의 어려웠던 시절'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였던 탓에 뉴스 화면 속 낯선 경제 용어들이 무섭게 느껴졌던 감각만 남아 있었을 뿐이었는데, 영화 한 편이 그 기억을 완전히 다른 온도로 되살려 놓았습니다.

IMF 외환위기,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몰랐던 것들
많은 분들이 IMF 외환위기(1997년 한국 외화 유동성 위기)를 "IMF 때문에 나라가 망할 뻔했다"고 기억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IMF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으로, 쉽게 말해 달러가 급히 필요한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글로벌 공공 금융기관입니다. 원인이 아니라 처방이었던 셈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65년부터 1987년 사이에만 무려 16차례 IMF에서 외화를 빌려 쓴 적이 있었고, 그때는 아무도 '국가가 망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1997년은 왜 달랐을까요. 핵심은 외환보유액(外換保有額), 즉 나라가 보유한 달러 등 외화 자산의 규모가 문제였습니다. OECD 가입(출처: OECD 공식 사이트) 과정에서 단기 외채에 대한 정부 통제를 풀어버린 결과, 국내 기업들이 해외 지점을 통해 단기 외화 차입을 얼마나 끌어다 쓰는지 정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여기서 단기 외채란 만기 1년 이하의 해외 차입금으로, 급격히 회수 요구가 들어오면 버틸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1996년 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약 200억 달러에 달했고, 태국발 아시아 통화위기가 번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제히 자금 회수에 나섰습니다. 이때 환율을 방어하려고 외환보유액을 계속 소진한 것이 결정타였습니다.
영화 속 장면 중 정부 고위 관료들이 누구를 불러야 할지조차 헷갈리던 모습이 있습니다. 처음엔 과장된 연출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직접 당시 상황을 찾아볼수록 그게 사실에 가까웠다는 걸 알고 씁쓸했습니다. 국가 외환보유액 잔액을 실시간으로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는 증언들이 그 장면을 뒷받침합니다. 일반적으로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컨트롤타워가 즉각 가동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는 걸 이 영화가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줬습니다.
- OECD 가입 조건으로 단기 외채 자유화 → 정부 모니터링 공백 발생
- 1996년 경상수지 적자 약 200억 달러, 반도체 가격 폭락이 직격
- 태국발 아시아 통화위기 전이 → 외국인 투자자 일제히 자금 회수 요구
- 환율 방어를 위한 외환보유액 소진 → 실질적 유동성 고갈
- IMF 구제금융 신청은 원인이 아닌 결과이자 처방
금모으기운동과 비정규직, 위기의 짐은 늘 같은 곳에 쌓였다
영화 말미에 자막 하나가 스쳐 지나갑니다. 전국 350만 명이 참여해 약 227톤의 금이 모였고, 그 금은 기업 부채 해소에 사용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극장 안에서 박수가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는 감독의 말이 그 자막을 보는 순간 정확하게 이해됐습니다. 저는 그 운동을 어린 시절 뉴스로 봤는데, 당시엔 막연히 나라를 위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찾아보니 그 금을 내놓은 분들 상당수는 평소 가장 아껴 살던 분들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모인 돈은 결국 과도한 차입 경영으로 위기를 키운 기업들의 빚을 덜어주는 데 쓰였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일제강점기 때도 나라의 위기를 몸으로 막은 건 언제나 국민이었다는 생각에 뭔가 뭉클하면서도 씁쓸했습니다.
IMF 구제금융의 선결 조건에는 세 가지 큰 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원화 가치 절하, 둘째는 기업 지배구조 개편, 셋째는 노동시장 유연화였습니다. 여기서 노동시장 유연화란 기업이 필요에 따라 근로자를 더 쉽게 고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도록 고용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이 시기부터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12월 이후 불과 1~2년 사이에 2만 5천 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도산했고(출처: 통계청), 자살률과 실업률이 동반 상승했습니다. 부동산은 30~40% 폭락했고 급매물이 쏟아졌습니다.
제 중학교 시절 주변에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친구 아버지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야반도주라는 말의 뜻을 그때 처음 피부로 알게 됐습니다. 영화 속 스테인리스 밥그릇 공장을 운영하는 갑수 캐릭터에 유독 감정이 이입된 건 그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흑자도산이라는 개념도 이 영화가 다시 떠올려줬습니다. 흑자도산이란 영업 자체는 흑자인데 어음 결제일에 현금이 없어서 도산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1년 뒤에 10억을 받을 계약이 있어도 이번 주 5천만 원짜리 어음을 막지 못하면 그냥 끝나버리는 구조입니다. 이자율이 갑자기 20%대로 치솟고 환율이 달러당 2,000원을 넘어가면서, 애초에 11% 이자율 기준으로 사업 계획을 짰던 기업들의 빚은 하루아침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이건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시절 경제 위기를 국민의 과소비 탓으로 돌리는 시각이 있지만, 제 생각으론 그건 책임을 잘못 짚은 겁니다. 기업들의 과도한 단기 외채 차입과 정부의 통제 실패가 본질이었고, 국민에게 있다면 그건 제대로 된 지도자를 가려내지 못한 잘못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생겨난 공무원 선호 현상, 안정 지향 세대를 향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전정신이 없다"고 말하는 건 그 위기를 겪고도 구조를 바꾸지 못한 어른 세대의 잘못이 더 크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IMF가 외환위기의 원인인가요, 결과인가요?
A. IMF는 원인이 아니라 처방입니다.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는 위기 상황에서 긴급 달러를 빌려주는 기관이 IMF이고, 우리나라는 이미 1965년부터 수차례 IMF를 이용한 적이 있습니다. 1997년이 달랐던 건 위기의 규모와 당시 정부의 대응 속도였습니다.
Q. 금모으기운동으로 모인 금은 어디에 쓰였나요?
A. 전국 약 350만 명이 참여해 약 227톤의 금이 모였고, 이 금은 외화 확보 및 기업 부채 해소에 사용됐습니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금이 결과적으로 과도한 차입을 일삼은 기업들의 빚을 덜어주는 데 쓰였다는 점에서, 당시 위기의 책임 소재와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비정규직은 왜 IMF 이후에 급격히 늘어난 건가요?
A. IMF 구제금융의 선결 조건 중 하나가 노동시장 유연화였습니다. 쉽게 말해 기업이 필요에 따라 근로자를 더 자유롭게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라는 요구였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Q. 당시 정부는 위기 상황을 왜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나요?
A. 영화에서도 묘사되듯, 대선을 앞둔 정치적 고려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실제로 외환보유액 잔액을 실시간으로 파악한 사람이 극소수였고, 언론도 정부 발표에 의존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이 제때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위기 상황에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당시 현실은 그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Q. 흑자도산이란 무엇이고 왜 이때 특히 많았나요?
A. 흑자도산이란 영업 실적은 흑자임에도 불구하고 단기 현금이 없어 어음 결제를 못 하면서 도산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1997년 이후 갑작스러운 금리 급등(일부 20%대 초과)과 환율 폭등(달러당 최고 약 2,000원)으로 인해 기존 사업 계획의 이자 부담이 두 배 가까이 불어나면서, 원래대로라면 살아남았을 기업들까지 연쇄 도산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결론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는 내내 가장 묵직하게 남은 건 특정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패턴이었습니다. 위기가 오면 만들어낸 사람들은 따로 있고, 수습하는 건 언제나 같은 사람들이라는 패턴. 그 사실이 영화적 과장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는 게 확인될수록 씁쓸함이 더 짙어졌습니다.
저는 두 번은 지고 싶지 않다는 영화 속 대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경상수지 적자, 단기 외채, 외환보유액 같은 숫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기는 한 번에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쌓여온 것이고, 그걸 알아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같은 역사를 반복할 가능성은 줄어든다고 믿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경제 역사 복습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느껴진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