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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제주도를 수십 번 출장으로 오가면서도 그곳에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아름다운 섬이라는 인식만 있었을 뿐, 그 땅이 품고 있는 슬픔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었던 셈이죠. 영화 <지슬>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무엇을 모르고 지나쳤는지 깨달았습니다.

성산일출봉 너머에 숨어 있던 제주 4.3사건의 역사
제주 출장이 잦아지면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제주를 그냥 '편한 곳'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올레길을 걷고, 오름에 올라 사진을 찍고, 해산물을 먹으면서 이게 제주의 전부인 줄 알았죠.
그러다 어느 날 성산일출봉 근처를 지나다 우연히 '터진목'이라는 팻말 앞에 멈춰 서게 됐습니다. 제가 직접 그 앞에 서 봤는데, 솔직히 처음엔 그냥 지명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안내판을 읽고 나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제주 4.3사건 당시 무고한 주민들이 집단 학살된 학살터였습니다.
뒤돌아보면 성산일출봉이 여전히 장엄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그 대비가 주는 씁쓸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 바로 옆에, 아직도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한 넋들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제주 4.3사건이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약 7년간 제주도에서 벌어진 국가 주도의 민간인 학살 사건입니다. 여기서 4.3이란 1948년 4월 3일, 제주 주민과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세력이 미군정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맞서 봉기한 날짜를 가리킵니다. 그 봉기 이후 국가 공권력이 제주도민 전체를 잠재적 '폭도'로 간주하며 초토화 작전을 펼쳤고, 공식적으로만 약 3만 명이 희생됐습니다(출처: 제주4.3평화재단).
국가폭력이 작동하는 방식, 지슬이 보여준 것(서북청년단의 만행)
영화 <지슬>을 보면서 제가 느낀 건 공포보다 당혹감이었습니다. 화면 속 군인들은 괴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는 명령에 의심을 품는 이병도 있었고, 감자 하나를 몰래 건네려다 죽는 일병도 있었습니다. 악은 특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의 도화선은 1947년 3월 1일 제주의 3·1절 기념식 행사였습니다. 행진 중 말 탄 경찰이 여섯 살 아이를 치고 달아났고, 항의하는 군중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이에 양심적인 경찰들이 파업을 선언하며 내부 분열이 생기자,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을 대규모로 제주에 파견합니다.
서북청년단(서청)이란 북한에서 월남한 개신교 청년들로 조직된 반공 단체입니다. 여기서 서북청년단의 핵심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비호 아래 경찰 지위까지 부여받았다는 점입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집단이 탄생한 것이죠. 그들은 빨갱이 색출이라는 명분 아래 제주 마을 곳곳에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1948년 11월 계엄령(戒嚴令)이 선포되었습니다. 계엄령이란 전시·사변 등 국가 비상사태 시 행정·사법권을 군이 장악하는 제도인데, 이때 내려진 명령은 해안선 5km 바깥의 모든 인원을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도민 10명 중 3명꼴로 희생됐고, 마을의 95% 이상이 불에 탔습니다.
초토화 작전(焦土化 作戰)이란 적의 거점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술입니다. 문제는 이 전술이 외부의 적이 아닌 자국 민간인에게 그대로 적용됐다는 사실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역사적 사실은 교과서에서 읽을 때와, 실제 그 땅 위에 서서 마주할 때 느껴지는 무게가 전혀 다릅니다.
- 1947년 3·1절 발포 사건 → 경찰 파업 → 서북청년단 제주 파견
- 1948년 4월 3일 주민 봉기 → 이승만 정부 수립 후 초토화 작전 본격화
- 1948년 11월 계엄령 선포 → 해안 5km 외 전원 사살 명령
- 공식 희생자 약 3만 명, 소각된 마을 95% 이상, 사건 지속 기간 약 7년
기억하지 않으면 반드시 반복된다
4.3사건은 수십 년간 금기어였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이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위험했고, 생존자들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 통곡조차 마음껏 할 수 없었습니다. 1978년에야 소설 <순이삼촌>이 발표되며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이 때문에 작가 현기영은 수없이 고문을 당했습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4.3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사건 발생 56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울지 않은 유족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말 하나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그리고 그 기다림이 얼마나 처연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제가 더 충격을 받은 건 그 이후였습니다. 2014년을 전후해 온라인을 중심으로 서북청년단의 부활을 선언하는 집단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이 서북청년단의 역사적 만행을 정말 몰랐던 건지, 알면서도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쪽이든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도 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기억하고 말해야, 같은 돌부리에 걸리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터진목 앞에 서 보기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습니다. 그리고 잊는 순간 역사는 슬그머니 반복될 준비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제주 4.3사건이 정확히 언제 일어난 건가요?
A. 직접적인 도화선은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이고, 본격적인 봉기는 1948년 4월 3일에 시작됩니다. 이후 계엄령 선포와 초토화 작전이 이어지며 1954년까지 약 7년간 학살이 계속됐습니다.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7년에 걸친 국가 주도의 폭력이라는 점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Q. 서북청년단은 어떤 단체인가요?
A. 북한에서 월남한 개신교 청년들로 조직된 반공 단체입니다. 미군정으로부터 경찰 지위를 부여받아 법 위에서 활동했고, 이승만 정부의 비호 아래 제주도에서 학살을 주도한 집단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알고 난 뒤로 '빨갱이 사냥'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끔찍한 현실을 은폐하는 말인지 실감했습니다.
Q. 영화 지슬은 어떤 작품인가요?
A. 오멸 감독의 2012년 흑백 영화로, 제주 4.3사건 당시 동굴에 숨어든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제목 '지슬'은 제주 방언으로 감자를 뜻하는데, 극한의 상황에서도 서로 나눠 먹는 감자 한 알이 영화 전체의 온도를 상징합니다. 역사적 사건을 거대하게 다루는 대신,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죽음을 담담하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Q. 제주도에서 4.3사건 관련 장소를 직접 볼 수 있나요?
A. 있습니다. 성산 인근의 터진목 학살터를 비롯해, 제주시에는 제주4.3평화공원과 기념관이 있습니다. 섬 곳곳에 당시 소각된 마을터와 희생자 위령비가 남아 있어, 관광지 사이사이에 역사의 흔적이 숨어 있습니다. 저는 출장 때 무심히 지나쳤던 곳들을 나중에야 다시 찾아 마주했는데, 그 감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결론
제주도를 수십 번 오가면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끄럽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 이토록 깊은 상처가 있었는데, 저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제주 4.3사건은 특정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가 자국 국민을 향해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아직도 진실규명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유족들의 상처도 다 아물지 않았습니다. 제주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오름과 바다만큼은 터진목과 4.3평화공원도 한 번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기억하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도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