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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터널' 리뷰 (안전불감증, 생존의지, 재난대응)

필름아카이브 2026. 11. 8. 01:38

목차


    주말 오후, 별생각 없이 꺼낸 영화 한 편이 두 시간 내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터널'은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속 한 남자의 생존기이지만, 솔직히 제가 보는 내내 더 무거웠던 건 터널 밖 풍경이었습니다. 스크린 너머로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너무 선명하게 겹쳐 보여서, 다 보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터널'
    우리나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터널'

    안전불감증 — 우리는 왜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영화 속 하도 터널이 무너진 직접적인 원인은 송전탑 건설 현장의 부실 시공입니다. 터널 위 산등성이를 흔들어놓은 공사가 버젓이 진행되는 동안, 아무도 위험 신호를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픽션이라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더 불편했습니다.

    안전불감증(Safety Insensitivity)이란, 위험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사고가 없었던 경험이 쌓이면서 정작 위험을 위험으로 느끼지 못하게 되는 심리적·조직적 둔감화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시스템 전체에 퍼진 상태입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시설안전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도로 터널의 정기 안전점검 미흡 사례는 꾸준히 보고되고 있으며, 노후 인프라에 대한 선제적 보강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반복됩니다(출처: 한국시설안전공단).

    "재난은 예고 없이 온다"고들 하는데,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대부분의 재난은 충분히 예고하고 옵니다. 다만 그 신호를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화 속 터널도, 현실 속 수많은 참사도 결국 그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 반복되는 대형 참사의 공통점: 사전 경고 신호 존재
    • 조직적 안전불감증: 개인이 아닌 시스템 차원의 문제
    • "지금까지 괜찮았다"는 낙관 편향이 가장 위험한 적
    요약: 안전불감증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위험 신호를 무시하는 구조적 문제이며, 영화 터널은 그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생존의지 —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사람을 버티게 하는 것

    주인공 이정수가 생수 두 병과 휴대폰 한 대만으로 열흘 가까이 버티는 장면들은 솔직히 보는 내내 목이 메었습니다. 그 답답한 공간에서 그를 붙잡아둔 건 거창한 의지나 훈련이 아니었습니다. 딸 수진이의 생일 케이크를 아직 못 갖다 줬다는 사실, 아내 목소리, 그리고 함께 갇힌 낯선 대학생 미나 씨에 대한 책임감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의미 중심 대처(Meaning-Based Coping)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의미 중심 대처란, 극한 상황에서 살아야 할 이유, 즉 삶의 의미를 붙잡음으로써 극심한 스트레스와 절망을 견뎌내는 심리적 전략을 말합니다. 단순히 "살고 싶다"는 본능과는 다릅니다. 연결된 존재들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는 힘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구조 작업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정수가 "나 이제 못 하겠어"라고 무너지는 순간, 아내가 "오빠 죽으면 나도 수진이도 다 죽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협박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건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가장 강한 형태의 메시지였습니다. 버티는 힘은 결국 관계에서 나온다는 걸, 그 한 마디가 증명해줬습니다.

    요약: 극한 상황에서 사람을 버티게 하는 건 본능이 아니라 연결된 존재들에 대한 책임감, 즉 의미 중심 대처의 힘입니다.

     

    재난대응 — 보여주기식 행정이 사람을 두 번 죽인다

    영화에서 가장 분노가 치밀었던 대목은 터널 붕괴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구조 작업이 한창이던 중, 담당자가 "죄송합니다. 저희가 딴 데를 봤습니다"라고 전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며칠을 헛짓했다는 겁니다. 그 말 한마디에 이정수가 무너지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습니다.

    재난 대응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골든타임(Golden Time)입니다. 골든타임이란 사고 발생 후 생존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지기 전, 구조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결정적 시간대를 의미합니다. 붕괴 사고의 경우 일반적으로 72시간이 기준으로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환경과 부상 정도에 따라 훨씬 짧아질 수 있습니다. 이 골든타임 안에 구조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 실패입니다.

    더 씁쓸했던 건 카메라 앞에서 달라지는 관계자들의 태도였습니다. 언론이 주목할 때는 적극적인 척, 현장에서는 책임 떠넘기기에 바쁜 모습. 이를 가리켜 퍼포먼스 행정(Performance-driven Administration)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실질적인 성과보다 외부에 보이는 이미지 관리에 치중하는 행정 행태를 뜻합니다.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재난관리 평가 보고서에서도 현장 대응 역량 강화보다 보고 체계 정비에 과도한 자원이 쏠리는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된 바 있습니다(출처: 행정안전부).

    "재난 때마다 똑같은 반성문을 쓴다"는 말, 저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 말이 계속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 아닐까요.

    요약: 골든타임을 허비한 엉뚱한 구조 방향과 보여주기식 행정은 재난 피해자를 두 번 절망하게 만드는 구조적 실패입니다.

     

    잊혀지는 공포 — 재난보다 무서운 건 사회의 망각이다

    영화 후반부, 이정수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무너진 콘크리트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자기를 잊고 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아내마저 "이제 구조 작업 끝났어. 기다리지 마"라는 메시지를 보낸 그 순간, 그 절망감은 배고픔이나 갈증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단순히 영화적 감동이 아니라 굉장히 현실적인 공포를 느꼈습니다. 대형 사고가 터지면 초반에는 온 나라가 들끓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뉴스 사이클(News Cycle)이 넘어갑니다. 뉴스 사이클이란 미디어가 특정 사건을 집중 보도하다가 다른 이슈로 관심을 이동시키는 주기를 말합니다. 피해자가 아직 현실과 싸우고 있는데, 세상은 이미 다음 화제로 넘어가 있는 겁니다.

    "가장 무서웠던 건 무너진 터널이 아니라 세상에서 잊혀지는 것이었다"는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제 경험상 그 어떤 화려한 액션 장면보다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 생존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존재로 인정받는 일임을 이 영화는 꽤 집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정수 한 사람 때문만이 아닙니다. "다 꺼져 새끼들아"라고 외치며 빛 속으로 걸어 나오는 그를 끝내 기억하고 버텨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재난 스릴러가 아닌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약: 재난 피해자를 두 번 고립시키는 사회적 망각, 즉 뉴스 사이클의 무관심은 콘크리트 더미만큼이나 사람을 짓누르는 또 다른 재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터널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건가요?

    A. 특정 사건을 직접 모티브로 한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국내에서 반복된 각종 붕괴 사고와 부실 시공 문제들이 소재의 배경이 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거 어디서 본 풍경인데"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허구이지만 허구로 느껴지지 않는 게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Q. 터널 붕괴 사고에서 실제 골든타임은 어느 정도인가요?

    A. 일반적으로 붕괴 사고의 골든타임은 72시간으로 언급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기준입니다. 부상 정도, 공기 공급 여부, 기온 등에 따라 훨씬 짧아질 수도 있고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시간보다 초기 대응의 정확성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그 두 가지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봅니다.

     

    Q. 안전불감증을 줄이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A. 안전불감증은 개인의 각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고, 개인의 인식 변화가 조직 문화를 바꾼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건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지"라는 낙관 편향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구조적 점검 시스템입니다.

     

    Q. 영화 터널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진 장면은 어떤 건가요?

    A.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제 경험상 구조 방향이 엉뚱하게 잡혔다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 가장 소름 돋았습니다. 며칠의 노력이 헛수고였다는 사실보다, 그걸 담당자가 담담하게 "죄송합니다"로 끝내는 태도가 너무 익숙하고 낯익어서 더 무서웠습니다.

     

    결론

    영화 터널을 다시 보고 나서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건 그냥 재난 영화가 아니다." 이정수의 생존 의지도, 함께 갇힌 미나 씨와의 연대도, 끝까지 버텨준 아내도 모두 감동적이지만,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 바깥에 있습니다. 안전불감증, 보여주기식 재난대응, 그리고 사회의 망각. 이 세 가지는 스크린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마저 제대로 못 고친다"는 말이 왜 아직도 유효한지, 이 영화 한 편이 꽤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서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이 정답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xy0bt-Bg30&t=105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