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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늦가을, 반팔 티셔츠 하나 달랑 입고 린킨파크 첫 내한 공연장 앞에 줄을 섰던 기억이 납니다. 춥다는 생각보다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마음이 훨씬 컸던 그 날, 저는 이 밴드가 제 청춘의 사운드트랙이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 누메탈 열풍의 중심에서 탄생한 린킨파크는 단순한 인기 밴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말로 꺼내기 힘든 감정을 대신 소리쳐 줬고, 전 세계 수천만 명의 팬이 그 울림에 함께 공명했습니다.

누메탈의 파고 위에서 탄생한 하이브리드 띠오리
저는 고등학교 때 밴드 동아리를 하면서 록이라는 장르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일렉 기타 소리 안에 묻혀 있으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같은 건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었거든요. 그 시절 좋아했던 밴드가 많았지만 린킨파크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랩과 록을 동시에 하는 밴드가 흔치 않던 때였고, 그 조합이 어색하기는커녕 너무 자연스럽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린킨파크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96년 결성된 제로(Zero)라는 밴드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여 만든 팀이었고, 이들이 처음부터 집착했던 건 랩과 록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섞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후 멤버를 보강하고 이름을 하이브리드 띠오리(Hybrid Theory)로 바꾸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때 한국계 미국인 DJ 조 한(Joe Hahn)이 합류합니다. 데뷔 초 그가 한국계인지 일본계인지를 두고 인터넷에서 논란이 있었는데, 본인이 직접 한국계임을 밝히면서 정리됐습니다. 지금이야 K-pop이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지만, 당시 세계적인 밴드에 한국계 멤버가 있다는 사실이 꽤 인상적이었기에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결국 Warner Music과 계약을 따내고, 이미 같은 레이블에 동명 밴드가 있어 밴드명을 또 바꿔야 했던 상황에서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이 캘리포니아의 링컨 파크에서 이름을 따왔고, 인터넷 도메인 등록 과정에서 철자를 살짝 바꿔 린킨파크(Linkin Park)가 됐습니다. 총 두 번의 개명 끝에 탄생한 이름입니다.
이들이 2000년에 발매한 데뷔 앨범 《하이브리드 띠오리》는 지금까지 3,000만 장 이상 팔렸습니다. 수록곡이 그래미를 수상하며 역사상 가장 성공한 데뷔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됐습니다(출처: Grammy Awards). 이 성공이 단순히 시대를 잘 만난 덕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누메탈(Nu-Metal)은 메탈에서 파생된 장르로, 기존 메탈의 화려한 기타 솔로 대신 낮게 튜닝한 기타로 묵직한 그루브를 만들고 랩을 접목한 음악을 가리킵니다. Korn의 데뷔 앨범이 장르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고, Limp Bizkit이 이를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런데 Limp Bizkit 계열의 뉴메탈은 여성 비하적 가사와 자극적인 이미지로 상당히 거칠고 방탕한 색깔이 강했습니다. 린킨파크는 그 흐름 속에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정반대였습니다. 극도로 내면적이고 우울한 감수성, 분노와 연약함이 동시에 담긴 사운드. 실제로 멤버들은 자신들이 누메탈로 묶이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 감정의 진원지는 체스터 베닝턴의 유년 시절이었습니다. 일곱 살부터 열세 살까지 심각한 성적 학대를 경험했고, 부모의 이혼으로 보호해 줄 사람도 없었던 그는 일찍이 약물에 손을 댔습니다. 그 상처들이 앨범의 가사 한 줄 한 줄에 녹아들었고, 그 절박함이 전 세계 청춘들의 내면을 건드렸습니다. 정신 건강에 대한 대화가 드물던 시절, 린킨파크는 용감하게 그 감정을 음악으로 꺼냈고 그 점에서 시대를 앞선 밴드였다고 생각합니다.
- 뉴메탈(Nu-Metal): 기타 그루브 + 랩 보컬을 결합한 메탈 파생 장르. Korn이 시발점
- 하이브리드 띠오리(Hybrid Theory): 밴드명이자 데뷔 앨범명. 다양한 장르와 여섯 멤버의 색깔을 균형 있게 섞는다는 철학을 담고 있음
- 데뷔 앨범 누적 판매량 3,000만 장 이상, 그래미 수상
- DJ 조 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린킨파크의 전자음악적 사운드를 담당
체스터 이후, 에밀리 암스트롱과 함께 쓰는 새 챕터
2003년 첫 내한 공연에 이어 2007년 두 번째 내한 공연도 직접 참가했습니다. 두 번 모두 공연장을 나서면서 든 생각은 같았습니다. '이 밴드는 오래가겠다.' 그래서 2017년 체스터 베닝턴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정말이지 저에겐 큰 충격이였습니다. 뉴스를 접하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어린 시절부터 쭉 함께해온 목소리였으니까요.
메테오라(Meteora), 미닛츠 투 미드나잇(Minutes to Midnight), 어 사우전드 선스(A Thousand Suns), 리빙 씽스(Living Things), 더 헌팅 파티(The Hunting Party), 원 모어 라이트(One More Light)까지. 앨범마다 방향을 바꾸면서도 린킨파크스럽다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밴드였기에,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체스터가 떠난 이후 밴드 재기에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고, 저도 솔직히 그 의구심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2018년 마이크 시노다(Mike Shinoda)는 자신의 본명으로 《포스트 트라우마틱(Post Traumatic)》을 발매했습니다. 체스터의 죽음 이후 밀려드는 복잡한 감정을 음악으로 정리한 작업이었습니다. 포스트 트라우마틱이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연상시키는 제목으로, 여기서 PTSD란 충격적인 사건 이후 감정을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고통받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이크가 그 제목을 앨범에 붙였다는 사실 자체가 체스터의 죽음이 밴드에 남긴 상처의 깊이를 말해줍니다.
그로부터 약 7년의 공백 끝에 린킨파크는 새 보컬 에밀리 암스트롱(Emily Armstrong)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새 드러머 콜린 브리튼(Colin Brittain)도 합류했고요. 마이크 시노다는 처음부터 린킨파크를 다시 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린킨파크가 아니라 그냥 새 음악을 하고 싶었던 거라고. 어차피 누가 와도 체스터의 빈자리를 대체할 수 없고, 그걸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일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에밀리의 보컬을 들으면서 방향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중간한 남성 보컬을 내세웠다면 체스터와의 비교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을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 역시 그 판단이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전혀 다른 색깔의 보컬을 내세운 것은 에밀리의 음악적 역량이 출중하다는 전제 위에서 가능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새 앨범의 이름은 《프롬 지로(From Zero)》입니다. 밴드의 원래 이름이 제로(Zero)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제목은 단순한 새출발 선언이 아닙니다. 밴드가 처음 시작했던 그 설렘과 포부를 다시 소환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제로에서 재구성한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멤버들은 에밀리와 합을 맞추면서 가능한 한 더 크고 강한 소리를 만들고 싶어졌다고 했고, 그 결과물이 린킨파크의 오리지널 에너지인 헤비메탈(Heavy Metal)적 사운드와 전자음악적 요소를 함께 담은 앨범으로 완성됐습니다. 여기서 헤비메탈이란 강한 기타 리프와 드라이빙한 리듬을 중심으로 한 록의 한 갈래로, 린킨파크는 이를 전자음악(Electronic Music)과 랩이라는 요소와 접목해 자신들만의 언어로 재해석했습니다.
이번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언셔터드(Unshattered)》는 단순한 홍보물이 아닙니다. 언셔터드란 산산이 부서진 것을 다시 붙인다는 의미로, 7년의 공백을 납득하게 만드는 진솔한 대화와 새로운 린킨파크의 공연 현장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직접 다큐를 보고 나서 느낀 건, 이건 체스터를 지우려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을 가슴에 품은 채로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출처: Linkin Park 공식 사이트).
자주 묻는 질문
Q. 린킨파크 조 한은 한국계인가요, 일본계인가요?
A. 조 한(Joe Hahn)은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데뷔 초 인터넷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본인이 직접 한국계임을 밝혀 정리됐습니다. K-pop이 세계 무대에서 지금처럼 주목받기 훨씬 이전에 세계적인 밴드에서 활동한 한국계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당시 팬들에게 꽤 상징적인 존재였습니다.
Q. 린킨파크가 누메탈 밴드라는 게 맞나요?
A. 누메탈이라는 장르적 분류로 묶이는 경우가 많은데, 멤버들 스스로는 그 분류를 거부했습니다. 누메탈이 Korn이나 Limp Bizkit처럼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이미지와 강하게 연결돼 있는 반면, 린킨파크의 음악은 내면의 고통과 감정적 취약성을 담은 훨씬 내성적인 색깔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르 레이블보다는 하이브리드 띠오리라는 그들의 자체 철학으로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Q. 새 보컬 에밀리 암스트롱은 어떤 뮤지션인가요?
A. 에밀리 암스트롱(Emily Armstrong)은 Dead Sara라는 록 밴드 출신의 보컬리스트입니다. 마이크 시노다가 처음에는 린킨파크를 재결성할 생각 없이 여러 보컬리스트를 만나던 중 에밀리의 보컬에서 밴드를 다시 일으킬 힘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체스터 베닝턴의 대체자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색깔의 보컬이라는 점에서 그 선택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다큐멘터리 《언셔터드》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극장 개봉 형태로 공개됐으며, 이후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한 공개 여부는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7년의 공백과 밴드 재건 과정이 진솔하게 담긴 다큐라는 점에서 린킨파크 팬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작품입니다.
결론
린킨파크를 응원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체스터 베닝턴이 떠났을 때 이 밴드가 다시 예전처럼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틀렸고, 그게 기쁩니다. 에밀리 암스트롱과 함께하는 린킨파크는 과거를 복사하지 않습니다. 하이브리드 띠오리 시절의 그 뜨거운 출발선 위에서,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쓰고 있습니다.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졌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솔직히 아닙니다. 하지만 린킨파크를 사랑하는 마음은 마음속에 여전합니다. 체스터와 함께했던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에밀리와 함께 써 나갈 새 챕터도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오래된 팬이든 새로 유입된 팬이든, 지금 린킨파크의 음악을 한 번 더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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