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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그냥 스릴러 한 편 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임스 맥어보이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저는 뭔가 다른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한 배우가 23개의 서로 다른 인격을 오가는 장면들, 세 번째 감상인데도 여전히 헷갈리고 여전히 소름이 돋았습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016년 작 <23 아이덴티티>는 그냥 '무서운 영화'로 소비하기엔 아까운 작품입니다.

다중인격이라는 설정, 실제로 있는 일이었다
제가 직접 세 번 봐야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케빈이라는 한 인물 안에 23개의 인격이 존재하고, 그 인격들이 각자의 이름과 성격, 심지어 신체 반응까지 달리하며 등장하는 구조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꽤 혼란스럽습니다. 데니스, 패트리샤, 헤드윅, 배리, 그리고 마지막에 실체를 드러내는 비스트까지. 저도 처음엔 누가 누군지 구분조차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설정이 완전한 픽션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케빈은 실존 인물 빌리 밀리건(Billy Milligan)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빌리 밀리건은 1977년 미국 오하이오 대학가에서 성폭행 용의자로 체포된 인물로, 수사 및 심문 과정에서 무려 24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가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인정받아 미국 역사상 최초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란, 한 사람 안에 두 개 이상의 독립된 인격 상태가 교대로 나타나는 정신 질환으로, 극심한 반복 외상(트라우마)이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출처: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이런 사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에 처음엔 정말 당혹스러웠습니다. 동시에 이런 사례가 반복된다면 사회적으로 어떤 혼란이 벌어질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플레처 박사가 주장하는 내용도 그냥 넘기기 어렵습니다. 그녀는 케빈 같은 환자가 단순한 인격 분열에 그치지 않고, 생각만으로 호르몬 분비를 바꾸고 실제 신체적 변화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아이디어는 심인성 반응(psychosomatic response), 즉 정신적 상태가 신체 생리 반응에 직접 영향을 주는 현상에 과학적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극도의 심리 상태가 실제 몸을 바꿀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물론 영화는 이 개념을 초인적 능력으로까지 확장하는데, 그 경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가 이 영화의 핵심 긴장감이기도 합니다.
- 빌리 밀리건: 1977년 미국에서 체포, 24개 인격 확인, DID 최초 무죄 판결 사례
-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 반복적 외상에 의해 두 개 이상의 독립 인격이 교대 출현하는 정신 질환
- 심인성 반응: 정신 상태가 신체 생리 변화에 직접 영향을 주는 현상
- 케빈의 인격 패거리(데니스·패트리샤·헤드윅)는 비스트라는 24번째 인격에 순응하는 구조
비스트는 케빈 안에만 있지 않다
세 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 제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케빈이 아니라 케이시였습니다. 생일 파티에서 왕따 취급을 받다가 클레어의 얕은 동정심으로 초대된 케이시는, 납치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도 내내 어린 시절 삼촌에 대한 기억을 반추합니다. 처음엔 그 회상이 단순한 행복한 기억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삼촌의 반복적인 성적 학대가 드러납니다. 그녀의 몸에 새겨진 자해 흔적은 그 세월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의 진짜 무게감은 나중에 찾아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 "그러면 케이시 삼촌 안에 있는 비스트는 뭐지?"라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케빈의 비스트는 화면 위에서 직접 포효하고 벽을 뒤틀며 존재를 드러냅니다. 하지만 케이시의 삼촌은 평범한 얼굴로, 가족의 웃음 속에서, 사냥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신의 욕망을 숨깁니다. 어느 쪽이 더 두렵냐고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삼촌 쪽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인간의 심리 구조를 연구하는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억압(repression)이라는 개념을 아주 날카롭게 건드립니다. 억압이란 무의식 속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충동이나 기억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는 심리 기제를 말합니다. 케빈에게 다중 인격이 그 억압의 극단적 산물이었다면, 케이시에게는 침묵과 복종이 억압의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케빈이라는 비스트를 실제로 맞닥뜨린 뒤, 케이시의 눈빛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삼촌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눈빛 하나로 전달되는 그 의지가 저는 오히려 영화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감정을 억압하고 가면을 씁니다. 그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억압이 반복적 외상과 결합될 때 어떤 균열이 생기는지, 이 영화는 꽤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클레어와 마르샤는 안정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랐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돼 있습니다. 반면 케이시는 고통을 몸으로 익혔기 때문에 케빈의 인격들과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감독이 "고통을 겪어본 자만이 진화한다"는 비스트의 논리를 단순히 악당의 망언으로 처리하지 않은 건, 그 논리가 현실 어딘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 논리가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상처받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내면에 저항의 씨앗을 품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는 건 사실입니다(출처: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자주 묻는 질문
Q. 23 아이덴티티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완전한 실화는 아니지만, 주인공 케빈의 설정은 1977년 미국에서 체포된 다중 인격자 빌리 밀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빌리 밀리건은 미국에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로 최초 무죄 판결을 받은 인물로, 실제로 24개의 인격이 확인됐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영화가 훨씬 다르게 다가옵니다.
Q.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는 실제로 존재하는 질환인가요?
A. 네, 실제로 존재하는 정신 질환입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란 한 사람 안에 두 개 이상의 독립된 인격이 교대로 나타나는 상태로, 주로 어린 시절의 반복적이고 극심한 외상 경험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다만 영화처럼 신체 능력이 변하는 수준까지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내용은 아닙니다.
Q. 23 아이덴티티는 시리즈 영화인가요? 순서대로 봐야 하나요?
A. 스플릿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3부작 중 제2부에 해당합니다. 제1부 언브레이커블(2000), 제2부 23 아이덴티티(2016), 제3부 글래스(2019) 순서로 이어집니다. 글래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언브레이커블부터 순서대로 보는 것을 권합니다. 23 아이덴티티만 단독으로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결말의 쿠키 영상 의미는 1부를 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Q. 케이시가 비스트에게 살려진 이유가 뭔가요?
A. 영화 속 비스트(그리고 케빈의 패거리 인격들)는 고통을 실제로 경험해본 자에게만 의미를 부여합니다. 클레어와 마르샤는 평탄한 삶을 살았지만, 케이시는 삼촌에게 오랜 학대를 당해온 흔적이 몸에 남아 있었습니다. 비스트는 그 상처를 보고 멈춥니다. 감독은 이를 통해 고통이 인간을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지를 묻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잔인함의 논리가 아니라, 상처받은 존재들 사이의 기묘한 공명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결론
세 번을 봤는데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볼 때마다 다른 걸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에 압도되고, 두 번째엔 케빈의 인격 구조가 보이고, 세 번째엔 케이시의 눈빛이 보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볼 때마다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비스트가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것보다, 그 비스트가 어디서 자라났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더 정직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케빈처럼 외상(트라우마)이 인격 분열로 이어진 경우든, 케이시 삼촌처럼 욕망을 가면 뒤에 숨긴 경우든, 그 비스트는 언제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 자라고 있습니다. 샤말란이 3부작을 통해 건네는 질문은 결국 하나입니다. 당신 안의 비스트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언브레이커블부터 글래스까지 순서대로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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