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영화를 꽤 많이 봐온 편인데, 2003년작 영화 '아이덴티티'만큼 두 번째 볼 때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지는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폭우 속 모텔에 고립된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설정인데, 그 안에 숨겨진 반전이 제목 '아이덴티티(Identity, 정체성)'와 정확히 맞물리는 순간의 서늘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폭우 속 모텔, 그리고 연쇄살인의 시작 — 줄거리영화는 두 개의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됩니다. 한쪽에서는 살인범 말콤의 재판이 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느 폭우 치는 밤, 우연히 한 허름한 모텔에 모이게 된 11명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시작은 이렇습니다. 여배우를 태운 리무진 기사 에덴이 승객의 휴대폰 배터리를 찾아주다가 부주의로 한 여성을 치는 사고를 냅니다. 그 여성의 남편 에드는 ..
영화 의 주인공 테디 다니엘스는 실은 자신이 찾고 있는 바로 그 범인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한동안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습니다. 스릴러 영화를 꽤 즐겨 보는 편인데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속은 건 처음이었거든요. 이 글에서는 영화의 반전 구조와 그 안에 숨겨진 심리학적 의미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연방보안관 테디의 수사, 처음부터 설계된 함정이었다1954년, 전설적인 연방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는 새 파트너 척과 함께 배를 타고 셔터 아일랜드로 향합니다. 목적지는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 안에 자리한 중범죄자 수용 정신병원 애쉬클리프(Ashecliffe). 그가 맡은 사건은 자녀 세 명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된 레이첼 솔란도의 실종입니다.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병원에서 환자가 흔적도 ..
솔직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이게 공포영화인지 의심했습니다. 피 한 방울 없이 그냥 낡은 집과 커튼, 그리고 니콜 키드먼의 표정만으로 등이 서늘해졌으니까요. 2001년작 영화 는 제가 지금껏 본 공포영화 중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작품입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 그 반전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질 않습니다. 반전 공포 — 분위기만으로 공포를 설계한 방식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저지섬(Jersey Island). 낡은 저택에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그레이스(니콜 키드먼 분)가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전쟁에 나간 후 연락이 끊겼고, 집 안의 모든 커튼은 항상 닫혀 있어야 합니다. 두 아이가 빛에 닿으면 심각한 반응을 보이는 광과민증(photosensitivity)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
당신이 살아있다고 믿는 이 세계가 사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구조라면 어떻겠습니까. 2005년 영화 는 그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집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단순한 SF 액션으로 접근했는데, 영화가 끝난 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복제인간 문제가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제인간이 꿈을 꾼다는 것의 의미영화는 처음부터 아주 영리한 방식으로 관객을 속입니다. 주인공인 복제인간 링컨 6-에코가 사는 곳은 깔끔하고 체계적인 생존 시설처럼 보이고, 사람들은 모두 아일랜드 추첨에 당첨되기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저도 초반 20분은 완전히 속았습니다. 이 시설이 낙원으로 가는 대기실처럼 느껴졌으니까요.그런데 링컨이 매일 밤 정체 모를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균열이 생깁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그 날 밤 10시, 효력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병사들은 서로를 향해 총을 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 하나로 영화 '고지전'이 기존 한국전쟁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작품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와는 다르게 영웅도 없고, 승리의 환호도 없이 끝나는 전쟁 영화. 그게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반전영화로서의 고지전 — 에록고지가 말하는 것영화 '고지전'의 배경인 '에록고지'는 실제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가상의 장소입니다. 이 두 고지는 6.25전쟁 후반, 철의 삼각지대(평강·철원·김화)를 둘러싼 치열한 전투의 핵심 거점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어느 쪽도 빼앗길 수 없는 보급로의 목줄 같은 곳이었던 셈입니다.제가 이 영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