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해 산 물건이 아이를 죽였다면, 부모로서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영화 '공기살인'은 실제로 있었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첫째 아이를 낳고 가습기를 장만했던 저로서는 이 영화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994년부터 2011년 사이였다면, 저 역시 아무 의심 없이 그 살균제를 사용했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가습기 살균제가 폐를 굳힌 원리, 영화는 어떻게 보여줬나영화는 한 아이가 수영 중 갑자기 쓰러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평소 몸이 약해 결석이 잦았던 민우가 수영장에서 팔다리를 굳힌 채 가라앉는 장면, 그 짧은 장면 하나가 이후 두 시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아들의 폐 엑스레이를 들여다본 아버지이자 의사인 태우는 처음에 원..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촉법소년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중학생 절도 사건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뭔가 찜찜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넷플릭스 소년심판을 보고 나서야 그 찜찜함의 정체를 제대로 마주하게 됐습니다. 드라마가 허구라지만, 극 중 사건들은 실제 판결 기록을 참고해 구성된 만큼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무척 얇습니다. 촉법소년 제도, 드라마가 보여준 현실일반적으로 소년법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교화의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만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소년심판을 보면서 그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드라마 첫 화부터 등장하는 장면이 강렬합니다. 만 14세 미만 소년이 초등학생을 목 졸라 살해하고 ..
만약 제가 하지도 않은 살인의 대가로 15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면 어떨까요. 영화 '재심'을 보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강압수사로 범인을 만들어내고 조작된 증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꺾었던 우리 사법의 어두운 시절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조작수사, 어떻게 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만드는가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엔 '설마 이 정도까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다 보니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단순히 나쁜 형사 한 명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한 청년을 범인으로 찍어내는 방식으로 굴러갔거든요.영화 속 강력팀 팀장 철기는 오토바이 사고 현장에서 목격자 신분이던 현우를..
1986년 경기도 화성, 10명의 여성이 연쇄 살인마에게 희생됐고 사건은 33년간 미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바로 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도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이 사건을 접할 때마다 "왜 아직도 못 잡았지?"라는 답답함이 가슴을 눌렀는데, 그 감정이 이 영화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진범 '이춘재'가 검거된 시점에 다시 본 '살인의 추억'은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 왔습니다. 수사기법 — 직감과 논리 사이, 그 처절한 간극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실화 기반이라고?"였습니다. 범죄수법, 수사 과정, 심지어 증거 부재 상황까지 당시 기록과 너무나 흡사하게 묘사돼 있어서 단순한 범죄 영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영화 속 두 형사는..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저는 10.26사태에 대해 꽤 알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유신독재의 마지막 장면,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진 그 밤을 책으로, 자료로 여러 번 들여다봤으니까요. 그런데 '남산의 부장들'을 극장에서 보면서 예상 밖이었습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가 스크린 위에서 이렇게까지 촘촘하게 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탄을 넘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역사적 디테일: 팩션 영화가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남산의 부장들'은 팩션(faction) 영화입니다. 팩션이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한 장르로, 역사적 사건을 뼈대로 삼되 상상력으로 살을 붙이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1990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
2024년 12월 3일 밤, 뉴스 속보 알림이 울렸을 때 저는 솔직히 눈을 의심했습니다. '설마 지금이 1979년도 아니고…' 하는 생각과 이야기로만 들었던 예전 군사반란이 떠올라 두려움을 느꼈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분노했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현실에서 비슷한 장면이 펼쳐지는 걸 목격했습니다. 12.12 군사반란의 구조와 2024년 비상계엄의 데자뷔, 그리고 우리가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이유를 짚어봤습니다. 12.12 군사반란, 그날 밤의 구조를 다시 읽다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피살됩니다. 권력의 공백이 생긴 바로 그 순간, 이미 오래전부터 기회를 엿보던 세력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육사 11기를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 사조직 하나회가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