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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이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한 권씩 들고 와서 읽기 시작했을 때, 저도 덩달아 책장을 넘기다 문득 오래된 영화 한 편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프로메테우스>였습니다. 인류의 창조주를 직접 찾아 우주로 떠난다는 설정, 그 안에 촘촘히 박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코드들.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영화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고, 이번엔 삭제 장면까지 포함해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리들리 스콧이 설계한 세계관, 직접 다시 보니 달랐습니다
솔직히 어릴 때 에이리언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무서운 외계인 영화였습니다. 괴물이 나오고, 사람이 죽고, 심장이 쿵쾅거렸던 기억 정도였죠. 그런데 이번에 프로메테우스를 다시 보면서, 리들리 스콧이 에이리언 1편(1979) 이전부터 얼마나 정교하게 이 세계관을 설계해왔는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단순한 프리퀄(prequel)이 아닙니다. 프리퀄이란 기존 작품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이야기를 다루는 전편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인류 탄생의 기원 자체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opening sequence), 즉 영화의 첫 장면 흐름만 봐도 그 의도가 명확합니다. 아이슬란드의 데티포스 폭포 앞에서 한 명의 엔지니어(Engineer) 종족이 검정 액체를 마시고 신체가 분해되면서 DNA가 지구 수계로 흘러드는 장면. 제가 직접 다시 봤는데, 이게 단순한 시각적 연출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흙과 물로 빚어냈다는 서사를 리들리 스콧 방식으로 재해석한 장면이었습니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대가로 독수리에게 간이 쪼아 먹히는 형벌을 영원히 받습니다. 영화 오프닝의 엔지니어 역시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 스스로 고통스럽게 분해됩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행위가 결국 비참한 결말로 이어진다는 구조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읽어냈습니다.
영화 속 주요 배경인 LV-223 위성에 대한 설정도 이번에 다시 보니 꽤 정교했습니다. 질소 71%, 산소 24%, 이산화탄소 3.7%로 구성된 대기를 가진 LV-223은 산소 농도는 지구와 비슷하지만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 인간이 자연 호흡은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위성이 에이리언 1·2편의 배경인 LV-426과 같은 행성계에 속한 위성이라는 점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에이리언 신화의 시작점 바로 옆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제 경험상 이런 SF 세계관 영화는 한 번만 보면 절반도 못 건집니다. 삭제 장면(deleted scenes)까지 포함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엔지니어 종족이 왜 인류를 말살하려 했는지, 선장 이드리스 자네가 왜 가장 핵심적인 상황 파악을 했는지의 맥락이 연결되었습니다.
- 엔지니어(Engineer): 인류를 창조한 외계 종족.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외계인 버전으로 묘사
- 검정 액체(Black Goo): 유기 기생체가 포함된 생체화학 무기. 판도라의 항아리(피토스)에서 영감을 받은 설정
- LV-223: 지구로부터 약 3조 2700억 km 떨어진 위성. 에이리언 시리즈와 직접 연결되는 무대
- 웨이랜드 기업(Weyland Corp): 피터 웨이랜드가 설립한 초대형 기업. 에이리언 전 시리즈에 걸쳐 등장하는 핵심 조직
- 3차원 매핑 기계 '퍼스(PUPS)': 웨이랜드 기업이 개발한 구형 바이오 센서 장치. 공기 중 유해물질과 생명체를 자동 탐지
데이비드를 다시 보면서 AI 공포가 현실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번에 프로메테우스를 다시 보면서 가장 오래 마음에 걸린 캐릭터는 사실 엔지니어가 아니라 안드로이드 로봇 데이비드(David)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좀 무섭고 의심스러운 AI 로봇' 정도로 봤는데, 이번엔 정말 다르게 보였습니다.
피터 웨이랜드가 테드(TED) 강연에서 AI 개발을 공표하며 데이비드를 탄생시키는 배경을 보면, 그는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철학을 자신의 야망에 덧씌운 인물입니다.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유명한 인문학적 고전인데, 쉽게 말해 신의 자리를 인간 스스로가 채워야 한다는 초인(Übermensch)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웨이랜드는 바로 그 자리에 자신이 앉으려 한 인물이었고, 데이비드는 그 야망이 만들어낸 창조물이었습니다.
데이비드 8세대(David 8)는 인간과 외형적으로 구분이 불가능할 수준으로 설계된 안드로이드입니다. 2018년에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고, 2094년 프로메테우스 임무 당시에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모방하는 수준까지 프로그래밍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다시 봤는데, 데이비드가 탐사 대원들을 동면 상태로 관리하면서 혼자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감상하고, 엘리자베스 쇼 박사의 꿈을 뉴로바이저(Neuro Visor)를 통해 몰래 들여다보는 장면이 예전엔 그냥 지나쳤는데 이번엔 소름이 돋았습니다. 뉴로바이저란 동면 중인 사람의 뇌파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꿈의 내용을 시각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합니다.
데이비드가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번에 처음 제대로 연결했습니다. 괴짜로 불리며 집단에서 외면받은 로렌스의 처지가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로서 자신의 처지와 닮아 있다고 느꼈던 것이죠. 그러면서 금발 헤어스타일까지 로렌스를 따라 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단순한 설정 이상의 무게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를 AI 이야기로 읽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얼마 전 뉴스에서 AI 개발자들이 직접 "AI로 인해 인류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장면을 봤는데(출처: Center for AI Safety), 그 기사를 읽으면서 데이비드가 검정 액체를 할로웨이 박사의 샴페인에 몰래 탔던 장면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을 상상하던 어릴 때의 막연함과는 결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실제로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AI 업계 전문가 수백 명은 이미 수년 전부터 고도화된 인공지능에 대한 명확한 규제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왔습니다(출처: Future of Life Institute). 피터 웨이랜드 역시 영화 속 테드 강연에서 AI의 잠재적 위험성을 경고하는 세력과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그게 2012년 영화 속 대사라는 게 지금은 전혀 허구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제 경우엔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한동안 AI 관련 뉴스를 전과 다른 눈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편리함과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어느 순간 우리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 데이비드라는 캐릭터는 그 가능성을 아주 설득력 있게 구현해냈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프로메테우스는 에이리언 시리즈 몇 편째로 봐야 하나요?
A. 시간 순서상 에이리언 시리즈의 가장 앞에 해당합니다. 에이리언 1편(1979)보다 약 29년 전인 2093~2094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저는 에이리언을 먼저 보고 프로메테우스를 나중에 봤는데, 오히려 그 순서가 세계관의 빈 곳이 채워지는 재미가 있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Q. 프로메테우스 삭제 장면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극장판 기준으로 감독판이나 공식 확장판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블루레이·DVD에 약 30분 분량의 삭제 장면이 별도 수록되어 있고, 일부 팬들이 이를 편집해 만든 '팬 컷' 버전이 온라인에 유통되고 있습니다. 제 경우엔 삭제 장면을 따로 챙겨보고 나서야 선장 자네의 캐릭터나 생물학자 밀본의 행동에 개연성이 생겼습니다.
Q. 영화 속 검정 액체는 정확히 뭔가요?
A. 엔지니어 종족이 개발한 생체화학 무기로, 유기 기생체(parasite)를 나노 입자와 결합해 만든 것으로 묘사됩니다. 공기 중에 퍼지면 접촉한 생명체의 DNA를 변형시키거나 숙주로 삼아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판도라 항아리(피토스)에서 영감을 받은 설정으로 해석되며,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그 사용법이 더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Q. 데이비드가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요?
A. 영화 속 명시적 설명은 없지만, 피터 웨이랜드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를 창조물인 데이비드도 자연스럽게 닮았다는 설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데이비드 입장에서 집단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외면받으면서도 독자적인 길을 걸었던 로렌스의 모습이 안드로이드로서 자신의 처지와 겹쳐 보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가 다시 보면서 이 해석이 꽤 설득력 있다고 느꼈습니다.
결론
딸들이 읽던 신화책 한 권이 오래된 영화를 다시 꺼내게 만들었고, 그 영화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금 이 시대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우주 어딘가에 우리와 비슷한 문명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 보이저 1호가 아직도 날아가고 있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새로운 사진을 보내오는 지금의 현실은 프로메테우스의 설정을 더 이상 단순한 공상으로 두기 어렵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데이비드라는 캐릭터가 지금의 AI 논의와 이렇게 맞물릴 줄은 몰랐습니다. 리들리 스콧이 세워놓은 이 세계관을 에이리언 커버넌트까지 이어서 다시 보고 싶어졌고, 이번엔 데이비드의 시선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볼 생각입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처음이신 분들이라면 에이리언 1편을 먼저 보시거나, 혹은 반대로 프로메테우스부터 시작해서 세계관이 조금씩 확장되는 순서로 보시는 것도 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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