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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삼일절이 되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저도 그 줄 속에 서 있던 한 사람이었고,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뭔가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옵니다. 감사한 건지, 미안한 건지,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건지.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제가 그 감정의 정체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하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항거 — 우리가 몰랐던 서대문형무소의 1년
유관순 열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외쳤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셨다"는 정도로 답합니다. 저도 그 이상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영화 <항거>는 체포 이후의 이야기, 그러니까 우리가 교과서에서 건너뛰었던 마지막 1년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1919년 4월,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는 그 자리에서 주동자로 체포됩니다. 공주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일본의 사법 체계 자체가 부당하다며 의자를 던지며 항의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고등법원에서 형량이 7년으로 늘어나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됩니다. 여기서 순국형사범(殉國刑事犯) — 즉, 독립운동으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은 수감자 — 이라는 분류로 8호 감방에 갇히게 되죠.
제가 직접 서대문형무소를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느낀 건, 공간 자체가 주는 압박감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었습니다. 좁고 어두운 독방 앞에 서면 설명 없이도 그 고통이 전해집니다. 그런 공간에서 열사는 삼일절이 다가오자 날짜를 알기 위해 날씨와 기후를 통해 날짜를 추측했고, 그날이 되자 빨래하다 일부러 쓰러져 만세를 외칩니다. "빨래 놓고 있을 순 없잖아요"라는 한 마디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주도 → 현장 체포, 30여 명 순국
- 공주지방법원 3년형 → 항의 후 고등법원에서 7년형으로 가중
-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 수감, 옥중 만세 운동 지속
- 왕세자 혼인 사면 당시 각서 거부 → 독방 이감, 고문 지속
- 1920년 9월 28일, 18세의 나이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항거가 포착한 것 — 열아홉이 아닌 열일곱의 유관순
유관순 열사를 '누나'나 '열사'라는 단어로만 기억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그 호칭이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실제 모습을 오히려 가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순국 당시 나이가 불과 17~18세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배우 고아성이 보여주는 유관순은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가집니다. 오빠가 벌레를 보고 뒤로 물러서면 누구보다 씩씩하게 달려가 때려잡는 개구진 10대의 모습, 그리고 형무소 복도에서 굳게 다문 입으로 만세를 외치는 불굴의 독립운동가의 모습.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 사람이 저런 아이였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가장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절제된 연기(minimalist performance) —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행동과 눈빛만으로 내면을 전달하는 연기 방식 — 가 이 영화에서 얼마나 효과적인지 고아성 배우가 직접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라는 질문에 "그럼 누가 해요?"라고 답하는 장면은 대사가 짧을수록 더 크게 울립니다.
또한 영화에는 유관순 열사 외에도 실존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기생 30여 명을 조직해 수원 기생 만세 운동을 이끈 김향화는 출처: 독립기념관의 기록에도 3.1운동 역사상 최초의 여성 조직 독립운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파주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된 인물도 실존 인물이며,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선배였던 인물 역시 고증에 기반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가 단순한 인물 전기를 넘어서 당시 여성 독립운동 전체의 지형도를 그려낸다고 느꼈습니다.
친일파는 번영하고 독립운동가는 잊히는 현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유관순 열사가 18세에 순국한 그 시간 동안,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며 한국 여성계의 선구자로 칭송받던 김활란은 친일반민족행위(親日反民族行爲) —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행위 — 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녀는 조선의 여성들에게 정신대 지원을 독려하고, 청년들에게 학도병 참전을 선동했습니다. 출처: 국가보훈부가 관리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도 그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화여대 내 동상 건립이 추진됐다가 재학생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사건은 꽤 최근의 일입니다.
제 경험상, 서대문형무소에 방문할 때마다 전시관 한켠에 이름 석 자도 남기지 못한 수감자들의 기록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그나마 우리가 기억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같은 감방에서 같은 고통을 견디다 순국한 이름 모를 수감자들, 지방에서 만세를 외치다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수십 명의 이야기는 여전히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가치에 크고 작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역사 교과서에 이름이 실리고, 누군가는 끝내 잊히는 이 불균형이, 일제의 억압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미력한 글이 그 기억의 빈칸을 조금이라도 채우는 데 닿기를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관순 열사가 순국할 때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이었나요?
A. 1902년생인 유관순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만 나이로 17세, 한국식 나이로 18세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나이라는 점에서, 그 용기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Q. 영화 <항거>에 나오는 김향화는 실존 인물인가요?
A. 네, 실존 인물입니다. 김향화는 1919년 수원에서 기생 30여 명을 이끌고 만세 운동을 조직했으며, 독립기념관 기록상 3.1운동 역사에서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주도한 최초의 독립운동 사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 다수가 이처럼 실제 역사 기록에 근거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항거>의 역사적 고증 수준은 높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지금도 방문할 수 있나요?
A. 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현재도 일반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에는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삼일절 즈음에 방문하는 것을 권하는데, 그 계절의 공기와 그 공간이 만나면 어떤 설명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Q. 유관순 열사의 실제 얼굴 사진이 맞는 건가요?
A. 많은 분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진이 고문 후 촬영된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유관순 열사의 얼굴은 그 사진과 상당히 달랐다고 하며, 현재는 수형기록표 이전 시기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복원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얼굴'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점,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요?" — "그럼 누가 해요?" 이 두 문장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영화 <항거>는 유관순 열사를 박제된 영웅이 아니라, 두려움도 있었을 10대 소녀이자 누구보다 또렷한 의지를 가진 독립투사로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 균형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고, 서대문형무소라는 공간을 다시 보게 만듭니다. 삼일절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그 문 앞에 서 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