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가 문득 뉴스 속 사건이 겹쳐 보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비스티 보이즈를 보면서 그랬습니다. 스크린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집착이, 며칠 전 뉴스에서 본 교제 스토킹 살인 사건과 자꾸 포개졌거든요. 윤종빈 감독의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하정우와 마동석의 날 것 그대로의 연기 덕에 지금도 입소문이 끊이지 않는 작품입니다. 인간 본성 — 유흥가 밑바닥이 보여주는 민낯비스티 보이즈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유흥가를 배경으로 도박, 사채, 불륜, 폭력이 뒤엉킨 인물들의 삶을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질감으로 담아냈거든요.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범죄 오락 영화겠거니 했는데, 보다 보니 이건 인간이 얼마나 쉽게 나락으로 떨어질..
경찰이 연쇄 살인 용의자를 잡겠다며 엉뚱한 사람에게 총을 쏴 죽입니다. 그런데도 그 경찰은 진급을 합니다. 2010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가 그린 장면인데, 처음 봤을 때 "이게 설마 지금 현실이랑 이렇게 비슷하다고?" 싶어서 뒤통수가 얼얼했습니다. 초동수사 실패가 만들어낸 부당거래의 시작영화는 다섯 건의 연쇄 살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경찰의 무능함에서 출발합니다. 국과수 감정 결과 혈흔 훼손 정도가 너무 심해 증거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 초동수사(初動搜査)란 사건 발생 직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최초 수사 단계를 말하는데, 이 단계에서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이후 수사 전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영화 속 경찰은 바로 이 지점에서 치명적으로 실패합니다.제가 평소 범죄 관련 방송이나 ..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그게 좋은 영화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2003년 개봉 당시 한국 최초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실미도'는 실제로 존재했던 684부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1.21사태를 먼저 접했는데, 그 계기가 좀 특별했습니다. 아내, 아이들과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에 자주 오르는데, 그 길목에 1.21사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 길이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역사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1.21사태, 그리고 복수를 위해 태어난 684부대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1968년 1월, 무장 공작원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단 5일 만에 청와대 코앞까지 접근했다는 사실을. ..
솔직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단순한 재난 액션물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변종 연가시라는 기생충 하나가 사회 구조 전체를 건드리는 방식이, 코로나19와 옥시 사태를 직접 겪어온 저한테는 그냥 스크린 속 이야기로 넘길 수가 없었거든요. 변종 연가시, 어떻게 인간을 숙주로 삼는가연가시는 원래 사마귀나 메뚜기 같은 육식성 곤충을 숙주로 삼는 사상충입니다. 여기서 사상충이란 실처럼 가늘고 긴 형태의 기생성 선형동물을 의미하는데, 숙주의 몸 안에서 영양분을 빼앗으며 성장하다가 산란기가 되면 숙주의 뇌 신경을 직접 자극해 물속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방식으로 번식합니다.영화 속 변종 연가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포유류, 나아가 인간까지 숙주로 삼을 ..
영화를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경험, 한 번쯤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영화 '대호'를 보고 나서 딱 그랬습니다. 단순한 호랑이 사냥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나서야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천천히 실감이 됐습니다. 민족정기, 상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민족정기를 지우려 했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호랑이가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단군 신화부터 올림픽 마스코트까지, 호랑이는 늘 우리 곁에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대호'를 보고 나서야 그게 단순한 '마스코트 이상'의 의미였다는 걸 제가 직접 실감했습니다.산군(山君),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왕(山中王). 이 모든 호칭이 호랑이를..
완벽한 커리어, 흠잡을 데 없는 삶. 그런데 정작 사람다운 삶이었을까요? 2015년 영화 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멈칫했습니다. 주인공 이연우가 남의 몸으로 살아가는 한 달, 그게 어쩌면 제가 지금 놓치고 있는 뭔가를 건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 되묻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성공한 변호사, 그런데 왜 공허했을까이연우는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입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변호사로, 미국 지사 발령까지 받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제가 느낀 건 "저 사람 참 외롭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이연우의 공허함은 어릴 때부터 시작됩니다. 마도로스였던 아버지를 잃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도로스란 배를 타며 오랜 시간 바다 위에서 생활하는 선원을 뜻합니다. 쉽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