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경기도 화성, 10명의 여성이 연쇄 살인마에게 희생됐고 사건은 33년간 미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바로 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도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이 사건을 접할 때마다 "왜 아직도 못 잡았지?"라는 답답함이 가슴을 눌렀는데, 그 감정이 이 영화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진범 '이춘재'가 검거된 시점에 다시 본 '살인의 추억'은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 왔습니다. 수사기법 — 직감과 논리 사이, 그 처절한 간극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실화 기반이라고?"였습니다. 범죄수법, 수사 과정, 심지어 증거 부재 상황까지 당시 기록과 너무나 흡사하게 묘사돼 있어서 단순한 범죄 영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영화 속 두 형사는..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분단 영화치고 너무 따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무게가 어디에 있는지를.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의 청년들이 총 대신 웃음을 나누다 끝내 비극으로 치닫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비극이 허구가 아니라 김훈 중위 사건으로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저는 꽤 오랫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남북 청년의 우정, 그게 진짜 문제였다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 중에는 "남북 청년들의 우정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달랐습니다. 비현실적이어서 슬픈 게 아니라,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슬픈 이야기라는 거였습니다.영화 속 이..
살다 보면 "그때 그 선택만 없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문득 치고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저도 몇 년 전 돌이키기 어려운 결정을 하고 나서 한동안 그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1999년 작 영화 은 바로 그 감정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를 절규하는 장면은 우리나라 영화계의 역사적인 명장면으로 손꼽히며 이 장면 하나로, 영화가 끝난 뒤에도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역순 구성이 '후회'라는 감정을 완성하는 방식영화는 2000년 현재의 김영호(설경구)가 강물에 뛰어들어 통곡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소풍 나온 사람들 속에서 홀로 절규하는 그 모습은 처음에는 그냥 이상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역순 구성, 즉 미래에서 과..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변호인이 딱 그랬습니다. 부림사건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그게 실제 역사라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읽어도 되는 책을 이유로 감옥에 가두는 일이 불과 몇십 년 전 이 땅에서 버젓이 벌어졌다는 사실. 그 충격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바보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림사건, 조작된 공안의 실체변호인은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실제로 일어난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부림사건이란 부산 지역 학생과 사회인들이 독서 모임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뒤집어쓰고 영장도 없이 체포, 감금, 고문을 당한 대표..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남산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수십 번은 남산을 오갔을 텐데도요. 영화〈하얼빈〉을 보고 나서야 다시 그곳을 찾아갔고, 여러번 방문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였지만 감회가 달랐습니다. 단순한 영화 리뷰가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역사적 맥락 — 안중근을 둘러싼 엇갈린 시선영화 〈하얼빈〉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불편함이 낯설었습니다.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신화산 전투 이후 포로 석방 장면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만국공법(萬國公法)에 근거해 일본군 포로를 풀어줍니다. 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