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황우석 박사 사건이 터졌을 때, 처음엔 제보자 쪽이 틀렸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러길 바랬습니다. 군 복무 중 야간 당직을 서다 우연히 틀어놓은 TV에서 "논문 사진이 조작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을 때, 저는 그게 설마 사실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영화 '제보자'는 바로 그 사건의 이면, 즉 진실을 세상에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너질 뻔했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언론사명감, 말은 쉽고 현실은 다릅니다일반적으로 언론인은 진실을 좇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제 경험상 뉴스를 오래 지켜보면서 느낀 건 그게 얼마나 이상적인 말인지입니다.영화 속 윤민철 PD(박해일 역)는 불법 난자 매매 제보를 시작으로 이장환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으로 파고..
현존하는 약 3,000개 언어 중 고유의 사전을 보유한 언어는 단 20여 개뿐입니다. 그 목록에 한국어가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제 가슴속에는 자부심이 가득차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 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이 숫자 하나가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분들의 무게를 그 어떤 대사보다 선명하게 전해줬습니다. 일제강점기, 말을 빼앗긴다는 것의 의미일반적으로 일제강점기의 탄압이라 하면 토지 수탈이나 강제 징용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가 영화를 보면서 새삼 실감한 건, 언어를 빼앗는 것이야말로 가장 교묘하고 잔인한 방식의 지배였다는 점입니다.1930~40년대 일본은 이른바 민족말살통치를 내세웠습니다. 여기서 민족말살통치란 조선인의 언어·이름·문화를 강제로 일본식으로 ..
12척으로 330척을 상대했다는 말, 사실 처음엔 좀 과장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명량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조선 수군이 칠천량 전투에서 거의 궤멸된 직후 벌어진 명량 해전. 승산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말이 안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그 극단적인 상황을 충무공 이순신이 어떻게 뒤집었는지,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전략과 리더십의 관점에서 짚어봤습니다. 명량 해전, 숫자가 보여주지 못한 것들저는 어릴 때부터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장군'이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랐습니다. 교과서에도 나오고, 위인전도 읽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명량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 사람이 그 순간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영웅이라는 타이틀 뒤에 가려진 고뇌가 처음으..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변호인이 딱 그랬습니다. 부림사건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그게 실제 역사라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읽어도 되는 책을 이유로 감옥에 가두는 일이 불과 몇십 년 전 이 땅에서 버젓이 벌어졌다는 사실. 그 충격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바보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림사건, 조작된 공안의 실체변호인은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실제로 일어난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부림사건이란 부산 지역 학생과 사회인들이 독서 모임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뒤집어쓰고 영장도 없이 체포, 감금, 고문을 당한 대표..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저는 그냥 '잘 만든 역사 영화' 정도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상영 내내 숨이 막혔고, 엔딩에서 실제 6월 항쟁 영상이 나오는 순간 저 또한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 있는거 같아 가슴이 벅찼습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거대한 역사를 뒤흔들었는지, 영화는 그것을 소름 돋도록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실화와 영화의 싱크로율 — 직접 비교해보니 달랐습니다일반적으로 실화 기반 영화는 극적 재미를 위해 사실을 상당 부분 각색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영화 1987은 제 경험상 그 공식이 거의 통하지 않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실제 역사가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영화는 그 팩트를 거의 그대로 옮겨 왔습니다.1987년 1월, 서울대학..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촬영된 영상은 국내 언론이 아닌 외국인 기자 한 명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처음 그 사진들을 마주했을 때, 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건 영화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꺼낸 사람들1980년 5월, 전두환 정권은 언론통제(Press Control)를 통해 광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철저하게 차단했습니다. 언론통제란 권력이 보도 내용을 검열하거나 억압해 진실이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막는 행위입니다. 이른바 '땡전 뉴스'로 불리던 관제 언론들은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거나 아예 침묵으로 일관했고, 양심 있는 기자가 제대로 보도하려 해도 동료들이 뜯어 말리는 분위기였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