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삼일절이 되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저도 그 줄 속에 서 있던 한 사람이었고,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뭔가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옵니다. 감사한 건지, 미안한 건지,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건지. 알수 없는 무거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영화 는 제가 그 감정의 정체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하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항거 - 우리가 몰랐던 서대문형무소의 1년유관순 열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외쳤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셨다"는 정도로 답합니다. 저도 그 이상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영화 는 체포 이후의 이야기, 그러니까 우리가 교과서에서 건너뛰었던 마지막 1년을 정면으로 다룹니다.1919년 4월,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한 유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그 순간만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은 바로 그 이후, 마지막 1년의 안중근을 담은 작품입니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불편한 질문을 함께 던지는 영화입니다. 하얼빈 의거, 그 전과 후의 맥락영화 은 1908년 제1차 국내 진공 작전에서 시작됩니다. 국내 진공 작전이란 만주와 연해주에 주둔하던 독립군이 국내로 진입해 일본군과 직접 교전을 벌인 무장 독립운동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국경을 넘어 총을 들고 싸운 전면전이었습니다. 안중근은 그 한복판에서 생사를 오가면서도 전쟁 포로를 함부로 죽이지 말 것을 주장했고, 만국 공법을 지키는 장군..
일제에 현상금 100만 원이 걸렸던 사내가 있습니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영화 한 편을 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고, 그 무지가 솔직히 부끄러웠습니다. 2016년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 은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브로, 일본 경찰과 의열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조선인 형사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화려한 액션 없이도 보는 내내 숨이 막혔습니다. 의열단이라는 존재, 왜 우리는 몰랐을까일반적으로 독립운동의 역사는 백범 김구 선생의 한인애국단을 중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 의 오프닝을 보고 나서 그 인식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영화는 김상옥 의사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열혈단신(熱血單身), 즉 혼자 몸으로 수십, 수백 명의 일본 순사와 맞서 싸우다 ..
1,270만 명. 2015년 영화 이 기록한 관객 수입니다. 저는 이 숫자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느꼈던 묵직한 감정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오락 영화를 봤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걸까, 그게 이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3기, 암살 작전이 시작된 배경영화의 배경은 1933년, 일제강점기 3기입니다. 흔히 이 시기를 민족 말살 통치기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민족 말살 통치란 일본이 조선인의 언어·이름·문화를 강제로 지우고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 했던 정책을 의미합니다. 창씨개명 강요, 조선어 교육 금지가 이 시기에 집중된 것도 그 이유입니다.영화를 보기 전에 이 맥락을 알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1910년부터 1919년까지 이어진 무단 통치기에 일제는 헌병 경찰이 칼을 차..
일본군 사상자 457명, 독립군 사상자 4명. 1920년 6월 7일 봉오동 골짜기에서 벌어진 이 전투의 결과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솔직히 눈을 의심했습니다. 동아시아 최강을 자처하던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독립군이 거둔 첫 번째 대승. 그 역사가 왜 지금껏 이렇게 조용했는지, 그게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독립군, 목숨을 건 유인 작전봉오동 전투를 이해하려면 먼저 '매복 유인 전술'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매복 유인 전술이란 소수의 병력이 적을 도발해 아군이 유리한 지형으로 끌어들인 뒤 대기 중인 주력 부대가 일제히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미끼가 되어 적을 함정으로 끌어들이는 전술이죠.문제는 그 미끼 역할이 말 그대로 목숨을 거는 일이라는 겁니다. 독립군 팀 대장 장하를 비롯한..
솔직히 저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라는 이유로 교과서 속 한 줄 정도로만 흘려보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영화 를 보고 받은 충격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최근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불거진 광주 혐오 응원, 스타벅스의 광주 민주화 운동 조롱 이벤트 논란을 접하며 다시 그날의 기억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5.18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5.18광주민주항쟁, 영화가 보여준 그날의 진실영화 를 보기 전까지 저는 5.18 광주민주항쟁을 막연히 "민주화 시위"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 인식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이건 시위가 아니라, 국가 권력에 의한 조직적 학살..